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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 한·일 관계 감정 아닌 득실로 따져야

중앙일보 2012.05.30 00:00 종합 32면 지면보기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지난 23일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됐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가뜩이나 어려웠던 동아시아의 두 이웃 간 관계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 정치인들은 일본 때리기에 나서 인기몰이를 하기보다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해 서울-도쿄 간 관계 안정화의 중요성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첫째, 1960년대 한국의 주목할 만한 경제성장은 일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50년대 미국의 원조 전문가들은 한국이 전쟁으로 고통받은 농업국가로밖에 성장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예상은 한국의 철강·화학 산업 붐을 계산에 넣지 못했기 때문에 완전히 빗나갔다. 물론 일본의 자금·기술·소재 지원은 자선 차원에서 제공된 게 아니고 냉전시대 미국의 압력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눈부신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심지어 일본을 능가한 분야도 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이 회사의 경쟁사인 일본의 3대 전자회사를 합친 것보다 많다. 이는 비상한 노력의 결과이지만 일본의 초기 지원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23일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됐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비롯한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첫 판결을 했다. 이국땅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던 이들이 70여 년 만에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사진은 일제 당시 징용됐던 조선인들의 모습.


 둘째, 원래 일본은 한반도 통일에 비판적 입장이었다. 북한이 급작스럽게 무너지는 것은 동아시아 지역 모든 주요 국가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뒤흔들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이웃 나라는 장차 이뤄질 한국 주도의 통일을 옹호할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동일한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데다 장차 한반도 통일을 논의할 국제기구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본의 지원을 얻는 것은 한국에 중요하다.



 셋째, 중국의 강대국 부상에 한국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이 한국을 다루는 방식은 한국이 핵심 우방인 미국·일본과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인들은 한국이 민주주의 우방인 미·일과 너무 가깝게 지내면 중국과 소원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베이징의 서울에 대한 존중이나 예우는 서울이 전통의 우방과 반목 없이 잘 지낼 때 더욱 강화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한·미·일 관계가 강화되면 서울의 중국에 대한 협상력이 강화된다. 3국 관계가 약해지면 중국은 자신보다 더 작은 이웃인 한국에 더 큰 목소리를 내게 된다.



 많은 한국인은 역사적인 분노 때문에 이 같은 분석에 부정적일 것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 이후 한국 대통령 가운데 한·일 관계 개선에 가장 적극적이었음에도 이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하지만 한·일 관계는 실질적으로 개선될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아시아 내 정치적 변화의 바람: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열렸던 ‘중앙일보-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포럼 2012’에서 만난 한국 관료들과 전문가들은 한·일 양국이 최근 두 가지 핵심 안보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정보보호협정(일명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이 그것이다. 이 협정들은 분명 한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만 과거 식민지 압제국과의 안보 관련 협정이라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체결이 연기되고 있다. 북한의 미래 도발을 방지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는데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은 한·미·일 3국 관계를 조율할 사무국을 설립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이 사무국은 앞으로 3국 간 GSOMIA나 ACSA를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상호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더구나 앞으로 3년 안에 이뤄질 전시작전통제권의 반환에 맞춰 3국 간 협력관계의 공식화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게다가 이런 사무국은 한·중·일 사이에선 쉽게 복제해 설립할 수도 없다.



 물론 한국인들은 이 모든 충고를 달갑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독도·위안부 등 과거사와 관련한 모든 문제에서 일본 관료들이 무능함을 드러낼 때 한국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국익을 챙겨야 한다.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정보보호협정(일명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한 정보 등의 군사 정보를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협정.



 ◆상호군수지원협정(ACSA)=한국군과 일본 자위대 간 장비와 수송작업 등에서 상호 지원하는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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