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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Me의 삶 거부하고 I로 살기 원하는 노년은 아름답다

중앙일보 2012.05.30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란 프랑스 영화를 본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영화를 보고 프랑스에 가고 싶었다. 노르망디 해변의 휴양도시 도빌의 백사장이 보고 싶었다. ‘바다바다바 다바다바다…’란 스캣이 되풀이되는 주제곡의 감미로운 선율 속에 주인공인 장 루이 트랭티냥과 아누크 에메가 해변을 걷는 장면이 눈에 선하다. 파리에 살 때 가끔씩 틈이 나면 두 시간 반 차를 몰아 도빌의 바닷가를 찾곤 했었다.



 클로드 를루슈 감독이 ‘남과 여’로 칸 영화제에서 영예의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던 1966년, 남자 주인공으로 이 영화에 출연했던 트랭티냥은 서른여섯 살이었다. 46년의 세월이 흘러 82세의 노인이 된 그가 다시 주인공으로 영화에 출연했다. 오스트리아 감독 미하엘 하네케가 연출한 ‘아무르(사랑)’다. 지난 주말 폐막된 제65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시상식 무대에 선 트랭티냥의 듬성듬성한 하얀 머리카락과 주름진 얼굴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올해 칸 영화제는 노인들의 잔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금종려상 수상작 자체가 죽음을 앞둔 노부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하네케 감독 자신이 70세이고, 트랭티냥의 상대역을 맡은 여배우 에마뉘엘 리바는 85세다. 1959년 칸 영화제 특별상 수상작인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열연했던 배우다. 칠순의 감독과 팔순의 남녀 배우가 의기투합해 최고의 작품을 만든 셈이다. 이번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랐던 22편의 영화 중 5편이 70대 이상 감독의 작품이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를 만든 프랑스의 알랭 르네 감독은 90세, ‘라이크 섬원 인 러브’를 찍은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72세다.



 평균수명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노인들의 활동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란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남에 의지해 사는 객체적 삶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이 되는 주체적 삶을 추구하는 노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노인 문제를 연구해 온 호남대 한혜경(사회복지학) 교수는 “Me가 아닌 I로 사는 ‘건강한 자기중심성’을 회복하는 것이 행복한 노년의 비결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호모 헌드레드(인생 100세)’ 시대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영화나 연극이든, 소설이든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작품은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선 70대 노인의 성(性)을 다룬 소설과 영화 ‘은교’가 화제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라는 미국 전쟁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의 말은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역할이 바뀔 뿐이다”로 수정돼야 할 것 같다. 칸의 무대에 다시 선 팔순의 트랭티냥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글=배명복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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