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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사자후는 간 데 없고 …

중앙일보 2012.05.30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오병상
수석논설위원
지난 주말 관악산에 올랐다. 연주암 요사채 마루에서 땀을 식힌다. 암릉의 골계미도 좋지만 연주암 범종 소리도 일품이다. 안식하러 찾은 산사, 풍경은 그대로인데 심사는 복잡해졌다. 연주암이 최근 조계종 추문의 발원지인 탓이다.



 추문은 백양사 인근 호텔에서의 도박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도 백양사에 주목하지 않는다. 정작 절집의 눈길은 자승 총무원장에게 쏠린다. 그 눈길은 뒤돌아 명진 전 봉은사 주지에게로 향한다. 둘 사이 오랜 은원(恩怨)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폭로 동영상을 ‘자승을 향한 명진의 화살’로 짐작하기 때문이다.



 연주암에서 얘기는 시작된다. 10여 년 전 자승과 명진이 이곳에서 친형제처럼 살았다. 주지였던 자승은 명진을 선원장으로 모셨다. 명진은 자승에게 은인이었다. 1994년 종단개혁 당시 개혁주체세력 명진은 추방될 위기에 처한 개혁 대상 자승을 구해 주었다. 명진은 이후 자승의 은사인 정대 스님이 총무원장 되는 것을 도왔다. 종단 권력을 잡은 정대 총무원장, 관악산 일대 사찰 재정을 장악한 자승, 그리고 이들과 손잡은 개혁주체 명진의 동거. 종단 권력의 정점이었다.



 그 무렵 자승과 명진은 결정적 오점을 남겼다. 세칭 ‘신밧드 사건’. 2001년 강남 룸살롱에서 양주를 마시다 종업원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불교신도였던 술집 주인이 참다 못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권력과 돈에 취한 파계였다. 두 사람은 참회를 약속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더 큰 권력으로 돌아왔다.



 두 스님의 형제애에 금이 간 것은 이명박(MB) 정부 들어서다. 총무원장이 된 자승 스님이 2010년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을 내쫓았다. 피해자 격인 명진의 설명이 설득력 있다. MB정권을 비판하고 운동권에 재정지원을 하자 정부·여당에서 외압을 가했다는 것이다. 불교운동권 출신 명진은 노무현 지지자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권양숙 여사가 시주하던 봉은사 주지가 됐다.



 반대로 자승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형 이상득과 함께 사찰을 돌며 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이 명진의 목격담이다. 자승은 MB정부 출범 후 총무원장이 됐다. 자승의 은사였던 정대 스님을 연상케 한다. 정대 스님은 김대중(DJ) 대통령 시절 불교운동권과 정치권의 후원을 받아 스스로 “자다가 총무원장이 됐다”고 말했다. 정대는 “이회창이 집권하면 희대의 정치보복이 난무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등 정치적 발언으로 DJ를 도왔다. 정대의 정치적 스승은 5·6공을 풍미했던 정치승 의현이다. 정치 DNA는 사제 간에도 유전되나 보다.



 조계종은 해방 이후 세속 정치권의 영향 속에서 성장해왔다.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조계종단의 영향력을 이용하고자 공을 들였다. 종단 권력자들은 이를 이용해 정치권력에 올라타려 해왔다. 그래서 세속 정치권력이 크게 바뀌면 종단의 정치권력 지형이 흔들리곤 했다. DJ-노무현 정권을 이어가며 공존했던 명진과 자승의 아름다운 인연이 MB정권 탄생 이후 악연으로 바뀐 셈이다.



 명진이 몰카에 직접 개입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명진은 “동영상의 존재는 미리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봉은사 주지에서 쫓겨날 당시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명진을 내쫓으라 했다”고 폭로했던 그의 측근은 이번 동영상 배포 과정에도 개입했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불교를 세속에 이용하려는 정치인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활용해 종단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승의 책임은 더 크다. 그렇다면 정치승에게 계율을 지키라고 읍소하는 것이 해결책일까. 지금까지 종단의 역사로 보면 연목구어(緣木求魚)다. 94년 종단개혁 이후 개혁의 주체나 대상이나 마찬가지로 참 개혁을 외면해왔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장악한 권력에 빠져 파계를 일삼았다. 개혁을 부르짖던 사자후(獅子吼·사자의 울부짖음)가 사자를 잡아먹는 사자충(獅子蟲·사자 몸속 벌레)이 된 꼴이다. ‘맹수의 왕 사자는 자기 몸속의 벌레한테 잡아먹힌다’는 부처님의 경고가 와 닿는다.



 고질병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뿌리는 돈이다. 정치권력은 각종 명목의 예산지원으로 종단을 미혹한다. 정치승은 돈으로 종단 권력을 사고, 유지하고, 누린다. 돈 만지는 게 파계다. 불교는 무소유며, 비구는 ‘걸식(乞食)’이다. 정치승의 참회와 각성을 기대하기보다 종단 구조를 혁신해야 한다. 승려들은 돈에 손대지 못하게 종법을 개정해야 한다. 종단 관계자들도 정답은 알고 있다. 극소수 정치승들의 저항만 있을 뿐이다. 사부대중이 모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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