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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바우히니아” 15년

중앙일보 2012.05.21 10:06
홍콩이 중국에 주권이 회귀(반환)된지도 15년이 된다. 1997년 7월1일 새벽안개 속에 홍콩의 빅토리아 하버를 떠나는 영국의 왕실 요트에는 찰스 왕세자와 마지막 총독 패턴이 타고 있었다. 패턴 총독은 7월1일 0시 “임무가 끝났음”이라는 마지막 전문을 보내고 홍콩에서 150여년간 펄럭이던 영국의 홍콩기를 회수하여 요트에 승선하였다.



영국 보수당의 당의장이었던 패턴의원은 메이저 당수를 도와 1992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정작 본인의 선거구에서는 낙선하였다. 메이저수상은 패턴을 홍콩의 마지막총독에 임명하였다. 패턴은 임기중 안정과 튼튼한 홍콩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중국이름을 팽정강(彭定康)이라고 짓고 영국지배하의 마지막 5년의 홍콩을 마무리하였다.



홍콩의 주권이 회귀된 후 초대 행정수반(1997-2002)으로 기업인 둥젠화(董建華)가 선임되었다. 그는 해운회사를 설립한 아버지 둥하오윈(董浩雲)과 함께 1947년 상하이를 떠나 홍콩으로 이주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10세였다.



적(敵)없이 사람 좋기로 유명한 둥젠화는 무난히 5년간의 1차 임기를 끝내고 연임(2대)되었으나 건강상 이유로 사임(2005.3)하고 후에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의 부주석이 된다. 둥젠화의 잔여 임기를 채우고 3대 행정수반(2007-2012)이 된 인물은 정무사장(총리격)인 도날드 창(曾蔭權)이었다.



도날드 창은 재정사장(財政司長)재임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금융이 극도로 불안할 때 국제투기(헤지 펀드)세력으로부터 홍콩금융을 지켜 낸 인물이다. 그는 사업가출신의 둥젠화와 달리 30년이상 홍콩 관료경험을 바탕으로 특구로서 홍콩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3월25일 금년 7월1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제4대 행정장관(2012-2017)으로 렁춘잉(CY 梁振英)이 선임되었다. 처음에는 재정사장과 정무사장을 역임한 헨리 탕(唐英年)이 유력하였다. 그는 홍콩 재계와 우호적이면서 중국정부의 고위지도자와의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헨리 탕은 혼외정사문제에 이어 호화주택문제가 언론에 보도됨에 따라 홍콩주민의 인기가 급격히 떨어졌다. 금년 가을 정권교체를 앞두고 홍콩의 안정이 필요한 중국정부는 당초 지지하기로 했던 헨리 탕을 버리고 친서민적이며 친중적인 행정회의 의장출신의 CY(梁振英)를 지지하여 당선시켰다.



홍콩달러는 미국달러에 연동되어 안전은 하지만 이자율이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 홍콩사람들은 자산보호를 위해 부동산투자에 열을 올리고 중국대륙의 홍콩부동산 투자도 급증되는 등 홍콩부동산이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임차료도 급등하고 있다. CY당선자는 노후 주택의 재건축과 바다를 매립하여 택지공급을 늘여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고 한다. 그는 홍콩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타이쿤(大君)들이 부(富)를 독점하고 있는 현상을 비판하고 부의 격차(wealth gap)를 줄이는 정책을 펴겠다고 하여 홍콩재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15년간 중국정부는 홍콩의 안정을 위해 친중적인 홍콩의 타이쿤과 공조(共助)하여 타이쿤에 우호적인 인물을 행정장관으로 선임해 왔다. 이번에도 예상대로였다면 홍콩의 타이쿤이 선호하는 헨리 탕이 선임되었을 것이다. 중국정부가 CY지지로 급선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리카싱(李嘉誠)등 홍콩의 타이쿤들이 끝까지 CY를 기피 “ABC( Anybody But CY)”를 주장 중국정부의 애를 태웠다.



홍콩의 꽃 “바우히니아”가 펄럭이기 시작한 회귀 15주년이 되는 7월1일 취임하는 CY당선자는 중국정부 타이쿤 그리고 홍콩서민의 삼각파도를 어떻게 헤쳐 갈 것인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안고 있다. 홍콩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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