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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500년 전 한글로 쓴 부부 사랑 편지

중앙일보 2012.05.21 00:31 종합 17면 지면보기
500여 년 전 변방에서 군관으로 근무하던 나신걸이 부인에게 보낸 한글 편지.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 있는 이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대전선사박물관]
‘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500여 년 전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담은 한글 편지가 복원돼 공개됐다. 이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 안정 나씨 묘서 출토·복원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로 추정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20일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의 안정 나씨(安定 羅氏) 묘에서 미라와 함께 출토된 한글 편지의 복원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이 편지는 지난해 5월 유성구 금고동 제2쓰레기 매립장 공사를 위해 안정 나씨 종중 분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당시 나신걸(羅臣傑·15세기 중반~16세기 전반 추정)의 부인인 신창 맹씨(新昌 孟氏) 목관 안에 미라와 복식, 명기 등과 함께 편지 2점이 들어 있었다. 편지는 출토될 때 꼬깃꼬깃 접힌 상태로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맹씨가 사망하자 후손들이 고인이 애지중지하던 편지를 같이 매장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는 당시 군관으로 함경도 경성(鏡城)에 근무하게 된 나신걸이 고향에 있는 아내 맹씨에게 보낸 것이다. 편지 뒷장에는 받는 사람이 ‘회덕 온양댁’으로 적혀 있다. 편지 속에 나오는 분과 바늘은 당시 매우 귀한 수입품이어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고 기록원은 설명했다.



 편지에는 또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애들이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중략) 못 보고 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라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장수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라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부인에게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라는 당부와 함께 옷가지를 챙겨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글들도 적혀 있다. 소작료와 세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자세히 알려주는 내용도 있다. 또 부인에게 ‘~하소’라고 16세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경어체를 사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편지는 16세기 전반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의 장례·복식문화와 한글 고어 등 생활풍습을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종전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순천 김씨 묘의 언간(諺簡·1555년 작성)보다 앞서 작성됐다.



 나신걸의 편지는 10월 개관 예정인 대전역사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 송귀근 국가기록원장은 “부부의 날(5월 21일)을 맞아 조선시대 부부의 정 을 생생히 담은 기록물을 복원할 수 있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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