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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뒤, 뮌헨의 전철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중앙일보 2012.05.21 00:00 종합 28면 지면보기
페르난도 토레스(오른쪽)를 비롯한 첼시 선수들이 20일(한국시간)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로 우승이 결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모습. [뮌헨 로이터=뉴시스]


현장에서 직접 본 첼시의 수비축구는 생각보다 훨씬 견고했다. 잠그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첼시 선수들은 FC 바르셀로나(스페인)를 상대로 이미 질식수비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처음부터 골을 넣기보다는 실점을 막겠다는 의도가 다분했다. 선수 교체 시점이 다소 늦었던 건 일찌감치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를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는 증거다.

김기동이 본 챔스리그 결승



 바이에른 뮌헨은 위력적인 팀이었지만, 뚜렷한 약점이 있었다. 프랑크 리베리와 아르연 로번을 활용해 좌우 측면을 파고드는 공격 패턴이 지나치게 단순했다. 게다가 두 선수 모두 심하게 볼을 끌었다. 한 템포 빨리 크로스를 올려야 할 타이밍에서도 드리블 돌파를 노렸다. 이 때문에 공격 흐름이 뚝뚝 끊어졌다. 뮌헨은 지난 13일(한국시간) 도르트문트와의 독일 FA컵 결승전(뮌헨의 2-5 패)과 똑같은 패턴으로 첼시를 상대했다. 그 경기도 현장에서 지켜봤는데, 심지어 로번의 페널티킥 슈팅 방향도 당시와 똑같았다.



 뮌헨의 패배에는 심리적인 부분도 작용한 것 같다. 후반 38분 뮐러가 선제골을 넣은 후 뮌헨 선수들의 긴장감이 급격히 무너지는 게 관중석에서도 느껴졌다. 이해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도 골을 넣지 못하다 막판에 천금 같은 득점을 했으니 기쁜 마음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냉정을 잃으면 어김없이 실수가 나온다. 역시나 뮌헨은 5분 후 코너킥에서 드로그바에게 실점했다. 그 짧은 방심이 첼시엔 107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뮌헨엔 올 시즌 무관(無冠)의 설움을 남겼다.



 독일의 축구 열기는 역시나 부러웠다. 결승전을 앞두고 뮌헨 구단은 이전 홈 구장인 올림피아 슈타디온을 대관해 팬들에게 단체관람 장소로 제공했다. 전광판을 통해 결승전을 생중계하고 5유로(7400원)의 입장료를 받았다. 이 티켓조차도 일찌감치 다 팔려 암표가 120유로(17만8000원)까지 치솟았다.



 결승전이 열린 알리안츠 아레나는 6만5000명 정도 수용 가능한데, UEFA에 티켓 구매를 문의한 사람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독일 현지 신문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읽었다. 한 축구팬이 인터넷 경매사이트에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티켓을 판다’는 글을 보고 곧장 2500유로(370만원)를 송금했는데, 나중에 도착한 건 17일 열린 여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티켓이었다고 한다. 급한 마음에 맨 밑에 깨알만 하게 적힌 ‘여자경기’라는 문구를 미처 확인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었다.



 시상식을 지켜본 뒤 지하철을 탔는데 뮌헨 팬으로 가득 찬 객차는 독서실보다도 조용했다. 일부는 고개를 숙인 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숙소에 도착해 지인에게 들으니 뮌헨 시내의 펍(pub)마다 울음바다였다고 한다. 물론 첼시 팬들이 모인 곳은 정반대였을 것이다. 축구 한 경기에 수많은 사람이 울고 웃는 장면을 직접 보니 전율이 느껴졌다. ‘삶이 곧 축구’인 유럽인들이 신기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뮌헨=김기동 객원기자





◆김기동=K-리그 통산 501경기에 출전해 39골 40도움을 기록했다. K-리그 필드 플레이어 최다경기 출전 기록을 갖고 있는 ‘그라운드의 철인’이다. 93년 유공에 입단해 18년 동안 그라운드를 뛰다 2011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은퇴한 뒤 선진 축구를 두루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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