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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세 필수코스 즉시연금보험 … 한 번에 10억원씩 가입

중앙일보 2012.05.21 00:00 경제 4면 지면보기
대형 법률사무소 고문인 김철수(58·가명)씨는 금융자산만 20억원에 달한다. 그는 최근 자산설계사의 조언을 듣고 2억원을 비과세 상품인 즉시연금보험에 투자했다. 금융종합소득과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비과세 상품인 물가연동 국고채와 브라질채를 사들였다. 그는 “최고 세율인 38%를 내고 나면 5%대 금리 상품도 3% 효과밖에 나지 않는다”며 “비과세 혜택이 마음에 들어 즉시연금 투자를 더 늘릴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 반포서래지점의 PB 임조연 부장은 한 달에 보통 서너 건의 즉시연금 상품 계약을 체결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입 문의가 부쩍 늘었다. 센터 고객의 절반 정도는 즉시연금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PB센터의 자산 설계 서비스를 받는 고객은 금융자산이 30억원 이상이다. 통계청의 ‘2011년 가계금융조사’에서 대한민국 상위 1%의 전체 자산이 평균 22억1352만원으로 집계된 것을 감안하면 상위 1% 중에서도 상위층에 해당한다. 임 부장은 “즉시연금 자체가 부유층을 겨냥한 상품”이라며 “1억원 정도 가입해서는 한 달 받는 보험금이 생활에 큰 도움이 안 돼 서민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비과세 혜택을 노린 ‘대한민국 1%’가 즉시연금보험으로 몰리고 있다. 일부 보험사의 경우 즉시연금 전체 가입액의 절반 이상이 5억원 넘게 들어온 뭉칫돈이다.



 즉시연금은 처음부터 ‘부자 상품’으로 꼽혔다. ▶한 번에 수천만원 이상의 목돈을 넣어야 하는 데다 ▶한번 가입하면 평생 해지할 수 없다. 여기에 금융 자산가의 최대 관심사인 ‘비과세 혜택’까지 갖췄다. 급할 게 없는 수억원대 여윳돈을 가진 사람의 구미에 딱 맞는 상품이라는 말도 이래서 나온다. 이정걸 국민은행 WM사업부 팀장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인 고객에게 ‘반드시 가입하라’고 권하는 상품 중 하나”라며 “안정성을 중시하는 50대 이상 고객 사이에서 특히 인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즉시연금 시장엔 ‘큰손’이 많다. 삼성생명이 자사 전체 즉시연금 가입 사례(1만여 건, 총 2조여원)를 분석한 결과 가입자 100명 중 5명(5%)꼴이 가입액 10억원을 넘는 자산가였다. 이들이 낸 납입액은 전체 가입액의 26%에 달한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즉시연금에만 10억원을 투자하는 이들은 금융자산이 최소 30억원, 전체 자산은 최소 50억원은 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고 가입액을 밝힐 순 없지만 20억원 가입자는 여럿”이라고 말했다.



 당장 생활비가 빠듯하지 않은 이들이 다달이 연금을 받다 보니 이를 다시 굴리는 재테크 상품도 인기를 끈다. 즉시연금에 가입한 뒤, 다달이 나오는 보험금을 적립식 펀드에 집어넣는 투자 방식이 대표적이다. 주식형 펀드 역시 비과세 상품인 데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위험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박승안 우리은행 PB는 “세금이 무서워 즉시연금에 가입하는 VIP 고객은 당장 생활 자금이 급하지 않아 다른 운용처를 찾는다”며 “이들이 물가상승 리스크를 없애려면 적립식 펀드가 적당하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후 대비용 자금에 대해 세금을 없애준다’는 비과세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이경희 보험연구원 박사는 “우리나라는 공적연금의 토대가 약하기 때문에 노령층의 소득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개인연금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것”이라며 “부유층의 투자자금까지 비과세로 하는 건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시연금의 인기에 휩쓸려 자산의 상당 부분을 몰아넣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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