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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할 수만은…' 상위 1% 부자들 뇌구조 보니

중앙일보 2012.05.21 00:00 경제 1면 지면보기
미래에셋증권은 올 들어 넉 달 동안 물가연동국채(물가채) 195억원어치를 팔았다. 지난해 내내 판 금액(43억원)의 다섯 배 가까운 규모다. 지난해 81억원이던 즉시연금 판매액도 4월까지 122억원에 달했다. 다른 금융회사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물가채와 즉시연금은 수퍼리치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소득 상위 1%용 상품’이다.


수퍼리치들 “부자증세 앉아서 당할 순 없다”… 절세상품 판매 급증

 한 번에 1억원 이상의 뭉칫돈이 들어가는 즉시연금과 물가채가 최근 폭발적으로 팔리고 있다. 정치권과 사회 일각의 부자증세 움직임에 맞서 소득 상위 1%에 해당하는 수퍼리치들이 본격적으로 절세상품을 사들이고 있어서다. 금융권은 이를 ‘상위 1%의 절세전쟁’ 으로 해석한다.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거액자산가를 관리하는 김영규 국민은행 골드&와이즈 강남 스타PB센터 수석센터장(PB)은 “1%의 관심사가 올 들어 급격하게 수익률에서 절세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1%자산을 관리하는 서울 강남파이낸스센터(GFC)에 있는 다른 금융회사 PB도 “요즘 1%들 사이엔 ‘그냥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정서가 일반적”이라며 “세금을 더 걷겠다는 ‘창’에 맞서는 ‘방패’를 준비하려고 부자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1% 사이에 가장 큰 이슈가 된 세금 문제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 확대 ▶비과세 혜택 축소 ▶한국판 버핏세(소득세 최고세율 구간 하향) 도입 등 크게 세 가지다. 그중 1%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종합과세 대상 확대다.



 총선을 한 달여 앞둔 3월 15일, 새누리당은 현행 금융소득 4000만원 이상인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을 당장 내년에 3000만원, 2015년에 2000만원까지 낮추겠다는 세제 개편 공약을 발표했다. GFC의 PB들은 “이날부터 종합과세에 잡히지 않는 분리과세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대표적인 상품이 물가연동채권이다. 부자들이 산다고 고금리·고수익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가채 표면금리 수익률은 1% 내외에 불과하다. 보통 사람 눈엔 왜 사는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하지만 금융소득이 과표에 잡히지 않는 분리과세·비과세 상품이라 필수 투자품목으로 떠오른 것이다. GFC에 있는 금융회사 두 곳과 동시에 거래하고 있는 자산가 김모(58)씨는 “종합과세 대상이 되면 누진세율이 적용돼 세금이 크게 늘어난다”며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오창섭 메리츠종금증권 채권 애널리스트는 “물가채는 수요가 없어 지난해 9월 이후 올 2월까지 한 번도 발행되지 못했다”며 “그러나 절세상품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올 3월과 4월 각각 예정발행액을 거의 채워 낙찰됐다”고 말했다. 3~4월의 발행액은 8125억원으로 지난해 발행액 1조1000억원에 육박한다.



 즉시연금보험의 인기는 물가채를 뛰어넘는다. 올 1~3월 단 석 달 동안 팔린 즉시연금보험 신규 가입액은 1조원으로 2010년 한 해 전체 가입액(1조2400억원)에 육박한다. 일부에선 ‘공포 마케팅’이 부자들의 절세상품 사모으기를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확정된 바 없다”는 데도 금융사들이 “비과세되는 저축성보험의 가입한도가 줄기 전에 서둘러 가입하라”며 가입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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