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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이 밀항 주선 … 25㎞만 가면 중국배 만나

중앙일보 2012.05.12 00:39 종합 6면 지면보기
10일 오후 경기도 화성 궁평항의 선착장 모습. 어선이 정박해 있는 자리는 지난 3일 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싣고 중국으로 가려던 밀항선이 대기했던 바로 그 장소다. [궁평항=이정봉 기자]


김찬경 회장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화성 궁평항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선착장 끝에선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느라 바삐 움직였고 관광객 20여 명이 방파제를 거닐고 있었다. 30여 명의 낚시꾼은 궁평항 왼쪽에 가지처럼 뻗어나온 150m 길이의 나무데크 끄트머리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김찬경 미래저축 회장 붙잡힌 화성 궁평항 가보니



 이곳은 김찬경(56·구속)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3일 밤 밀항을 시도하다 해양경찰에 붙잡힌 장소다. 하지만 믿기 어려울 만큼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선착장을 둘러보니 배를 묶을 수 있는 쇠말뚝 11개가 10m 간격으로 박혀 있는 반면 가로등은 하나도 없었다. 밤 낚시꾼으로 위장해 어선에 타면 적발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인천·태안반도의 포구와 달리 산업단지 개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아 밤에는 인적이 드물다고 한다. 선착장이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나왔기 때문에 썰물의 영향도 작은 편이다. 궁평항이 밀항의 적격지로 꼽히는 이유다.



 궁평항 바로 아래 포구인 매향리만 해도 군이 설치한 철조망과 해군 초소가 있어 입출항 통제가 까다롭다.



위 사진은 당시 김 회장을 밀항시키려고 기다리던 알선책 일행을 해경이 몰래 찍은 것이다. 해경은 3일 밤 9시 이곳에서 밀항을 시도하던 김 회장과 알선책 등 5명을 체포했다. [궁평항=이정봉 기자]
 해양경찰청 관계자는 “이곳에서 첩보를 입수하지 않고 밀항을 단속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했다. 실제로 해경은 지난해 12월 밀입국 전력자 등으로부터 "저축은행 고위 관계자가 밀항을 시도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첩보를 얻은 뒤 낚시꾼을 가장해 잠복해 오다 김 회장을 검거했다.



 이곳에서 만난 어민 정모(51)씨는 “여기서 공해까지는 100㎞를 가야 하지만 25㎞ 떨어진 풍도 인근만 가도 중국 배를 쉽게 만날 수 있다”며 “궁평리 어선만 270척인데 평택항을 드나드는 배까지 섞이면 감시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그는 “요즘 어선은 수천만원대 엔진을 2개 이상 단 경우도 많아 마음먹고 속력을 내면 경비선은 따라붙지 못한다”고 했다.



 해경에 따르면 김 회장은 공해상에서 중국 배로 갈아탄 뒤 산둥(山東) 반도를 향할 계획이었다. 2010년 개봉한 영화 ‘황해’에서 나온 장면처럼 중국에서 한국으로의 밀입국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적발됐지만 중국으로 밀항을 시도하다 붙잡힌 건 김 회장이 처음이다. 해경은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 밀항하는 것은 ‘막장 범죄자의 최후 수단’”이라고 말했다.



 궁평항 등 서해안 일대에는 중국·국내 조폭과 연계한 밀항 브로커가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어민 김모(52)씨는 “여권 위조 전문가인 조폭 출신의 밀입국 브로커가 밀항을 주선한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국제조직범죄문제연구소 안흥진 소장은 “국내 조폭이 중국동포 조폭과 연계해 중국으로의 밀항을 주선한다는 첩보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 밀항 비용은 보통 1000만~1500만원인 일본 밀항 비용보다 더 비싸다. 위험이 크고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밀항 시 4~5명이 타는 소형 고속 선박인 ‘고속선외기’가 주로 이용되며 포구까지 밀항자를 운반하는 육상운반책, 배를 대고 외국까지 항해하는 해상운반책, 밀항자와 선박을 연계하는 알선책 등 조직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차명 보유 카지노에 250억 불법대출 의혹=금융감독 당국은 최근 “김 회장이 2008년부터 제주 서귀포 중문단지 내 특급호텔 카지노를 2개 법인과 1개 개인 명의로 차명 보유해왔고, 이곳에 250억원을 불법대출한 정황이 있다”며 검찰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김 회장이 최근 이 카지노를 100여억원에 매각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해 총 350여억원의 행방에 대한 추적 작업에 나섰다.



 한편 검찰은 한주저축은행 간부가 고객 350명에게 가짜 통장을 발급해준 뒤 예금 160여억원을 빼돌렸다는 정황을 포착해 이 간부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이정봉·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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