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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없어 더 귀기울입니다 … 마음의 눈으로 판정합니다

중앙일보 2012.05.12 00:34 종합 10면 지면보기
11일 오전 10시 첫 시각장애인 법관인 서울북부지법 민사 11부 최영(32) 판사가 701호 민사중법정에 들어섰다. 김대규(38) 배석판사의 팔을 붙잡고서다. 최 판사는 자리에 앉자 법대 위 노트북에 연결된 이어폰을 꼈다. 서면자료를 볼 수 없어 문서파일을 읽어주는 음성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최 판사는 재판 진행 중 초점 없이 앞을 바라보다가 누가 말을 하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귀 기울여 들었다. 이따금 정성태(46) 부장판사 등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 판사가 소속된 재판부는 주유소 임대차 계약 관련 소송 등 총 6건의 재판을 진행했다.


첫 시각장애 법관 최영 판사

 법원이 이날 최 판사의 재판 모습을 공개했다. 최 판사는 지난 2월 말 시각장애인(1급 시각장애)으론 처음으로 판사로 임명됐다. 고교 3학년 시절이던 1998년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현재 시력은 방 안에 불이 켜졌는지 알 수 있는 정도다. 임용 후 두 달여 동안 최 판사가 주심판사를 맡은 사건은 22건인데 한 번도 재판 처리와 관련해 민원이 들어온 적이 없다고 한다. 최 판사는 아직은 다른 판사에 비해 사건 배당을 적게 받는다.



 최 판사가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은 다른 판사와 사뭇 다르다. 소송장과 각종 증거자료들이 접수되면 실무관이 이를 육성으로 읽어준다. 물건과 같은 증거는 그림을 그리듯 상세하게 묘사해준다. 그 뒤 최 판사가 선택한 부분을 타이핑해 문서파일로 만들면 음성 지원프로그램을 통해 언제든 들을 수 있게 된다. 판결문 작성 때는 타이핑 즉시 텍스트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이창열 북부지법 공보판사는 “최 판사는 음성기록 파일을 두 번 정도 들으면 거의 사건 내용을 외운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이 끝난 후 최 판사는 “임용되기 전에 두려움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두려움이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다”며 “반면 법관이라는 직업이 주는 무게감과 책임감이 또 다른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다”고 했다.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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