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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의 쉬운 풍경 9 ] 보리짚 태우는 들판 … 이모작의 추억

중앙일보 2012.05.12 00:21 종합 15면 지면보기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읍, 2005. ⓒ강운구


우리나라 농사에서도 이모작을 한다. 보리를 거둬들인 뒤에 밭을 논으로 전환해 벼를 심는다. 보리밭을 논으로 바꾸려면 먼저 보리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를 불태우고 갈아엎은 다음에 물을 대고, 써레질을 하고… 해야 한다. 봄의 막바지에 지체 없이 빨리 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이제는 남쪽 지방에서 아주 드물게만 이모작을 할 뿐이다. 논조차 일손이 달려서 놀리는 게 많은데 밭을 논으로, 가을에는 논을 밭으로 전환해 할 사람은 많지가 않다. 그 전엔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난 뒤에도 겨울에 땅을 놀리는 것이 아까워 거의 모든 남쪽 지역에서는 벼를 거둔 뒤에 보리를 심는 이모작을 했었다. 이제는 일손이 달리기도 하지만 수확한 보리 값이 노동의 대가를 보상하지 못하니 애써서 그렇게 할 사람은 많지 않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농촌에서는 늦봄에 보리를 수확한 뒤에 보릿대와 그루터기를 태우는 연기가 구름처럼 하늘로 퍼졌고, 그 독특한 내음은 땅 위로 기어 그 연기보다 더 멀리까지 풍겨나가 사람과 마을에도 배었다.



 그 전엔 농부들은 꼭 계산해 가며 농사일을 하진 않았었다. 노동의 대가가 나오든 말든 농부가 할 일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농부들이라고 해서 바뀌는 세상을 안 따라가거나 못 따라갈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곧 ‘우리나라 농사에서 이모작도 했었다’로 바뀌게 될 것이다. 왜 ‘우리 밀’은 있어도 ‘우리 보리’는 없을까? 우리는 배 부르자 입맛이 바뀌어 이 땅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연명하게 했던 고마운 곡물을 배반하고 있다.



 그런데 봄(과 가을)은 짧고 여름과 겨울은 길어져 간다. 올봄도 오자마자 여름에 자리를 빼앗긴 듯하다. 어디서나 극단보다는 중간이 많은 게 가장 좋다. 사람의 목소리가 그렇듯이 중간 음이 많이 나는 음악이 듣기 좋고, 아주 검거나 아주 흰 빛보다는 중간 색조가 많은 사진이 보기에 편하다. 음악에서 줄여 말하자면 메이저(장조)는 기쁘고, 마이너(단조)는 슬프다. 이 세상도 그렇다. 하이 키(흰빛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사진은 가볍고, 로 키(검은색이 지배하는 화면) 사진은 무겁다. 그러므로 백과 흑 사이에 여러 단계의 중간 색조가 많은 사진이 기술적으로 표준이 되는 좋은 사진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안팎으로) 그렇게만 되어 있지는 않다. 나의 사진에는 대체로 검은빛이 많은데, 마침 이 사진은 연기가 많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중간 색조가 많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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