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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세계 속으로 카자흐 키메프 대학 총장 방찬영

중앙일보 2012.05.12 00:10 종합 24면 지면보기
[사진 키메프 대학]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이하 카자흐)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말했다. “왜 볼로샥(청년 국가 장학생)과 키메프대 졸업생만 졸업 즉시 취직되는가…. 우리 대학들은 뒤처져 있다.” 대통령이 칭찬한 카자흐의 키메프(KIMEP)대학. 그 성공 신화가 나오기까지 올해로 20년이 걸렸다.

20년 만에 … 취업률 90% 중앙아시아 최고 대학 만들다



그 연설 이틀 전인 25일 키메프대 정기 이사회. 미국 국적의 한국인 방찬영 총장은 “2011년 졸업생 90% 이상이 취업했다”고 보고했다. 분야는 회계·금융·무역·석유 같은 알짜배기였다. 2010년엔 87%, 2009년엔 79%. 날로 취업률이 높아진다. 방 총장은 “우리 대학 졸업생이 없으면 현지 딜로이트 회계법인은 운영이 안 된다. 우리 문제는 경쟁자가 없는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럴 만했다.



졸업생 나굴즈(여)는 “회계법인 어네스트 영과 카자흐 석유사 카즈메니 가즈에서 오퍼가 왔는데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4개 오퍼를 받은 학생도 있다. 삼성전자 현지법인은 직원 50%가 키메프대 출신인데 최근 8명을 더 뽑았다. 삼성 카자흐·중앙아시아법인의 김승구 법인장은 “학생들이 우수하고 충성심도 있고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월급은 당연히 높다.



이 대학 등록금은 연 7000달러. 2009년 1인당 국민소득이 6700여 달러니 꽤 높다. 그래도 입학생이 늘고 기자가 만난 20명의 학생은 다 만족한다고 했다. 게다가 인근의 ‘탄자 돌림 가난한 나라’에서 150명을 뽑아 여러 장학금을 준다. 동문도 빵빵했다. 1994년 졸업생인 자르볼로바 사이다는 ING은행의 CEO, 디야로브 다우렌은 국영통신사 이사장, 2000년 졸업생 우마로바 갈리나는 에어 아스타나 부사장이다. 키메프는 그렇게 카자흐와 중앙아를 통틀어 가장 급성장하는 최고 사립대학이다.



키메프 대학 전경.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그래서 키메프를 ‘대학의 엄친아’로 꼽았지만 그리되기까지 키메프와 방 총장의 20년은 험하고 길었다. 뿌리는 더 멀리 옛소련까지 거슬러 오른다. 그는 젊은 시절 소련과 카자흐에 얽혀 들었다. 연세대를 졸업, 64년 미국 유학을 떠나 75년 샌프란시스코 대학 교수 겸 아시아문제연구소장이 됐다. 소련을 오가며 세미나를 23번씩 했다. 개혁·개방이 화두이던 시기. 그는 이즈베스티야·프라우다 같은 소련 유력 언론에 거듭 등장했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에서 동북아 안보 문제로 강연을 했고 노태우 정부 시절엔 특사로 소련과의 국교 수립을 거들었다.



90년 6월 비로소 당시 소련 총리의 소개로 모스크바에서 카자흐 서기장이던 나자르바예프를 만났다. 시내 카자흐 연락사무소에서 4시간 동안 진지하게 얘기했다. 어떻게 개혁할지 고민하는 서기장에게 방 교수는 “사유화가 필요하다” 했고 성공한 한국 얘기를 들려줬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거의 붙어 다녔다. 91년 방 교수는 서기장 특별보좌관 겸 개혁위원회 부위원장이 됐다. 또 그의 소개로 고르바초프를 알마티와 모스크바에서 두 차례 만났다. 방 교수는 씁쓸해했다. “고르바초프는 ‘미국 교수가 사회주의를 무너뜨리려 하나.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자랑스러운 공산주의자로 죽었다고 무덤에 쓰이길 원한다”고 한 것으로 회상했다.



91년 4월 나자르바예프는 방찬영 및 참모들과 새벽까지 예의 ‘개혁 토론’을 했다. 교수는 “대학을 세워 인재를 키우자”고 했다. 그달 말 서기장은 공산당 중앙당 간부학교를 방 교수에게 내줬다. 구체제의 수호자인 당 간부를 키우는 센터였다. 그러나 돈 지원은 없었다.



키메프 대학원 과정을 시작했다. 카자흐엔 생소한 행정·경제·경영학과를 만들어 110명을 뽑았다. 박사 학위 없는 미국인 자원자 10명과 총장이 된 방 교수가 직접 가르쳤다. 그리고 호소편지를 썼다. 당시 유럽공동체엔 서기장 명의로 350만 유로를 요청했다. 그러자 ‘대학은 무슨. 사람 보내면 교육해 주겠다’고 냉소했다.



91년 8월 모스크바에서 쿠데타가 터졌다. 모든 게 끝나는가. 숨죽이며 밤을 새우자 새 세상이 밝았다. 독립국가 카자흐의 탄생이었다. 92년 유럽공동체는 세 사람을 보냈다.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의 동생이 대표였다. 그는 총장에게 “예의상 왔으니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두 시간 특별 강연에서 학생들의 열의에 녹아 확 변했다. 몇주 뒤 450만 유로 지원을 알려 왔다. 영국도 25만 파운드를 지원했다. 미국·캐나다도 합류했다. 그러나 교수와 수업 장비를 모두 지원받기 때문에 방 총장은 실권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대학은 학생 400명, 외국인 교수 30명으로 착착 커갔다.



방 총장은 93년 말 서울로 왔다.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가 대소 관계 개선을 지원해 달라고 해서였다. 열심히 일하는데 그만 95년 삼풍 백화점 붕괴로 가족 모두를 잃었다. 극한의 고통을 겪으면서 96년 카자흐로 돌아온다. 키메프는 엉망이었다. 고람 모스타파 학장은 “쓰레기가 뒹굴고 개들이 들끓었다”고 했다. 지원 중단 통보가 왔으니 문을 닫자는 교수도 있었다. 밀린 교직원 월급에, 장학금까지 더해 빚도 300만~400만 달러나 됐다.



그런데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또 맡으라고 했다. 의욕이 없었다. 거절해도 거듭 불렀다. 국제 투기 자본가 조지 소로스가 관심을 보였지만 대통령은 오로지 방 총장이었다. 계속 고사하자 대통령은 “마음대로 해라. 그런데 닫으면 정치문제가 된다”고 했다. 결심했다. 대통령 산하 국립대인 키메프를 사립대로 바꾸고 일반 대학으로 전환키로 했다. 설립 당시 키메프의 운영·예산·인사·해고권을 ‘방찬영’ 1인에게 준 법령이 근거였다.



그리고 개혁했다. 말썽을 부리는 외국 교수 30명을 내보내고 학교를 휘어잡았다. 그렇게 질서가 잡혀 갔다. 폭풍 성장이 시작됐다. 학생이 400명에서 900명으로 되더니 곧 1500→2200→3000→4000→4500→5300명으로 팽창했다. 등록금이 싸지도 않다. 96년 700달러였던 연간 등록금이 지금은 7000달러. 당시도 지금도 주로 중상층 자녀가 온다. 수입이 안정되자 교수진도 탄탄해졌다. 회계학 담당인 엘리아 교수를 거액 연봉 6만 달러로 첫 초빙한 뒤 외국인 교수가 줄을 이었다. 현재 평균 연봉은 7만~7만5000달러다. 카자흐 국립대 교수의 연봉은 최대 1만2000달러 정도다.



방 총장의 명성도 커갔다. 2005년 대통령은 그를 부총리급인 아스타나 도시개발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역사에 남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서명 하나에 100만 달러를 주겠다는 검은 유혹이 뻗쳐 왔다. 석유 메이저도 접근했다. 다 물리쳤고 취임도 안 했다.



그런데 2007년 국제 금융위기의 격랑이 키메프를 쳤다. 고유가 덕에 떵떵거리던 카자흐의 금융이 무너지고 경제가 얼어붙었다. 학생은 학비가 싼 국립대로 몰렸고 키메프 학생은 3200명으로 추락했다. 학교는 수년간 허리띠를 졸라맸다. 요즘은 연 잉여금이 1000만 달러씩 되고 경기도 회복돼 학생이 는다.



지금 가장 큰 어려움은 현지와의 갈등이다. 2009년 학생이 커닝으로 정학 2년을 받자 아버지인 검찰 부총장이 들볶았다. 방 총장에게 “비리를 다 안다”고 협박했다. 같은 해 국세청이 엉뚱한 세금 55만 달러를 때렸다. 대통령 ‘어전 회의’에서 “잘못이 있다면 대학을 반환하겠다”며 사표를 던지는 강수로 문제를 해결했다. 키메프 대학 자산은 방 총장측이 60%, 카자흐 정부가 40%를 소유한다. 인가 취소 협박도 짜증이다. 문교 당국은 서구 박사인 Ph D를 인정할 수 없다느니, 학생당 공간이 좁다느니 하며 벌써 두 번이나 인가를 취소했었다. 그때마다 대통령의 호된 질책과 방 총장의 으름장으로 해결했다. 요즘은 대학원에서 대학교로 바뀌면서 생긴 문제로 또 시비가 걸려 있다. 다 옛 소련 규정을 무리하게 적용하려해서 생긴 문제다.



방 총장은 “대통령이 밀어주고 칭찬하니 질시를 받는 것이며 대책은 투명한 운영뿐”이라고 했다. 비리에 무관용 정책을 쓰고, 학생을 예산·징계·입찰 위원회에 앉혀 교수·직원과 함께 30%의 표결권을 갖게 했다. 교수도 엄격히 관리한다. 영어만 쓰고 러시아어는 금지다. 163명 교수 중 외국인은 23개국서 온 69명. 70%가 박사다. 3년 내 세 개 이상 국제 수준의 논문을 못 내면 퇴출이다. 올해에 벌써 39명이 나갔다. 90개 이상의 대학과 파트너십을 맺고 독일 훔볼트대, 영국 그래스고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한국의 연세대 등과 복수학위 협정을 맺었다. 지금 13개 대학과 협상 중이다. 한국에선 고려대·성균관대·중앙대·서강대다.



방 총장은 “내 꿈은 카자흐 교육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잘 운영할 사람이 있으면 당장 떠날 수 있다”고 했다. 또 “한국 대학생은 시야를 넓혀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 왜 포화상태인 미국만 고집하느냐”며 “키메프는 영어·러시아어를 마스터하고 지역 전문가가 되는 3개의 이점을 준다”고 했다. 현재 외국 학생은 231명, 한국 학생은 32명이다. 동국대를 다니다 키메프에서 새로 시작한 황현태(28) 경영학과 학생은 “여기에 훨씬 더 좋은 미래가 있다”고 했다. 마케팅학과 조경민(25) 학생도 같은 의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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