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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마켓워치] ‘베를린 컨센서스’후퇴 … 길게 보면 호재일 수도

중앙일보 2012.05.12 00:00 종합 31면 지면보기
글로벌 증시가 유럽발 공포에 다시 떨고 있다. 안전지대로의 대피령이 내려진 듯 어수선한 분위기다. 미국 다우지수 1만3000 선이 무너졌고, 전차군단(삼성전자, 현대·기아차)이 지키던 코스피지수 2000 방어선도 뚫렸다. 석유와 금 등 원자재 가격도 급락세로 돌아섰다. 반면에 안전자산의 대명사인 미국과 독일의 국채 값은 연일 뛰고 있다.



 프랑스 대선과 그리스 총선의 결과가 도화선이 됐다. 두 나라의 국민이 ‘재정긴축을 통한 위기 극복’ 처방에 반기를 든 야당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유럽 위기의 최고 처방으로 인식됐던 게 바로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긴축이었다. 독일이 앞장서 주창했다는 점에서 ‘베를린 컨센서스’라고 불렸다. 그러나 프랑스와 그리스의 선거 결과 베를린 컨센서스의 질서가 와해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영국 등 주변국들은 이런 변화를 반기고 있다. 독일은 궁지로 몰리고 있다.



 벌써부터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약속한 긴축계획을 폐기하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거쳐 유로존 탈퇴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씨티그룹은 그 가능성을 75%로 봤을 정도다. 구체적으로 내년 말께에는 그리스가 자국 통화를 쓰게 될 것이란 전망도 가세한다. 아울러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양해 아래 긴축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투자자들로선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위험자산을 처분해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이유다.



 그러나 길게 보면 결국 가야 하고 유럽 경제도 살리는 길일 수 있다. 베를린 컨센서스는 따지고 보면 부자 나라 독일과 채권 보유자인 국제 금융자본의 강요로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빚을 끌어 쓴 국가들이 최선을 다해 상환 의지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도리다. 하지만 지금 같은 무리한 긴축구도는 채권자와 채무자 둘 다 죽는 수순일 수 있다. 실물경제가 거덜나면 빚 갚을 능력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흥청망청 빚으로 연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장이 용납할 리 없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럽 국가들은 재정건전성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긴축을 점차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길을 모색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그리스라는 답이 없는 꼬리는 결국 자르는 수순을 예상한다. 미국에서도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오바마 행정부와 긴축을 유지하려는 공화당 간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미국 경기가 2분기 들어 다시 주저앉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미 국민은 오바마의 선택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있다.



 주식 투자자 입장에선 세계 각국이 경기부양적 노력을 기울이는 게 분명 호재다. 정부의 재정 투입에 따른 총수요 확대와 어느 정도의 인플레는 기업 투자를 유발하고 가계 소득도 늘릴 수 있다. 다만 채권을 대량 보유 중인 국제 금융자본은 완강히 저항하며 시장의 불안을 조장할 공산이 크다. 새로운 컨센서스가 자리 잡기까지 어쩔 수 없는 진통이다. 투자자들은 당분간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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