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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파워중견기업인 양재하 동양기전 사장

중앙일보 2012.05.12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지난달 중순 인천시 남동구에 있는 동양기전의 자동차 부품 공장. 양재하(60) 사장이 글로벌 완성차업체에 납품하고 있는 와이퍼 실험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김도훈 기자]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부활』, 김훈 『칼의 노래』,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하이럼 스미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 짐 콜린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창업주 회장이 세 아들 대신 사장에 앉힌 사람



 딱히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이 책들의 공통점은 뭘까. 고전소설부터 경영학까지 주제가 다양해 대입시험을 위해 발제됐거나 청소년 교양도서로 선정된 책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들은 중장비제조업체 동양기전에서 승진자에게 요구하는 독후감 책 목록이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필독도서도 따로 있다. 독후감을 써내는 것은 물론이고 2차 면접으로 독서토론도 진행한다.



“기업 경영은 맛있고 영양가 높은 열매를 따는 일과 같다. 좋은 열매를 따려면 땅속의 보이지 않는 뿌리에 거름을 주어야 한다. 당장 효과를 거두기 위한 화학비료가 아닌 거름을 제대로 주어야 한다.”



 양재하(60) 동양기전 대표이사 사장이 실천하고 있는 ‘독서경영’의 철학이다. 직원을 인재로 키우기 위해 독서라는 거름을 준다는 것이다.



 동양기전은 굴착기·지게차에 들어가는 유압기기와 자동차부품, 자동세차기와 같은 산업기계를 주로 만든다. 지난해 매출 7280억원, 영업이익 675억원을 올렸다. 지난달 중순께 방문한 서울 신월동 서울사무소의 모습은 여느 제조업체 사무실 풍경과 비슷했다. 직원들은 동양기전 로고가 찍힌 작업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한 유압기기가 들어간 굴착기·지게차 모형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휴게실부터 사원들 책상 위까지 사무실 곳곳에 유독 책이 많았다. 건물 4층에는 1300여 권의 책이 진열된 도서관이 있다. 동양기전의 인천·창원·익산 공장에도 있다. 모든 책을 합치면 1만 권이 넘는다. 양 사장은 “기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의 창조정신은 독서에서 비롯된다. 이게 없으면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동양기전은 1978년 설립된 동양유업으로 출발했다. 이후 사업분야를 유압기기에서 자동차부품, 산업기계로 확장시키면서 현재의 동양기전으로 자리 잡았다. 2003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양 사장은 3대 사장이다. 1대 사장은 창업자인 조병호(66) 회장이다. 그에겐 세 아들이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회사를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1997년 자신의 뒤를 이을 대표이사 사장을 뽑았다.



 “동양기전은 ‘사원의 회사’다. 사원 중에서 대표이사를 뽑는다”는 게 조 회장의 원칙이다. 그의 첫째 아들은 만화가고, 둘째는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다. 셋째는 패션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조 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서 회사의 큰 흐름에 대해 조언만 한다. 양 사장은 “대표이사로 취임하고 나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게 있어 몇 차례 회장한테 갔더니 ‘이런 것 더 이상 나한테 갖고 오지 마’라고 자르시더라. 많이 부담됐지만 그만큼 성장했다”며 웃었다.



 서울대 기계학과 출신인 조병호 회장은 대우중공업에 다니다 32세에 창업했다. 건설장비의 ‘팔의 근육’에 해당하는 유압실린더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하고, 서울시 지하철 자동문 개폐장치를 만들어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1987년 6·29 선언 이후 불어닥친 노동운동으로 회사에 위기가 왔다. 동양유압의 창원공장 근로자들이 근무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공장을 폐쇄하고 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당시 조 회장은 공장 담을 넘어 농성자들을 만났다. 밤샘토론을 했다. 회사와 농성자들의 입장을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 이튿날 동틀 무렵 사태는 평화적으로 해결됐다.



 이 일을 계기로 조 회장은 “사원이 즐거운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양 사장은 “회장이 그 이후 ‘즐거운 사원’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고, 직원들이 제안해 ‘깨끗한 일터, 튼튼한 회사’를 추가해 지금의 사훈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일생 중에 30년을 일할 회사에서 돈만 벌기 위해 지낸다면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가.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경영자는 죄인이다”는 말을 조 회장은 입버릇처럼 늘 달고 살았다고 한다.



 동양기전에선 중요한 의사결정이 있을 때마다 전사 경영협의회가 열린다. 경영협의회는 경영자위원회와 근로자위원회로 구성된다. 근로자위원회에는 3개 사업부에서 뽑힌 위원장과 위원이 참여한다. 임금조정, 중장기 경영계획 수립부터 창립기념일 행사까지 회사의 모든 일을 이 안에서 협의해 결정한다. 양 사장은 “2008년 창립 30주년 행사를 할 때 경영협의회에서 직원들이 초청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유명가수보다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가수를 결정하더라”며 흐뭇해했다. “이렇게 결정을 잘하니 믿고 맡겨도 된다. 걱정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기까지 독서라는 거름의 힘이 컸다. 1991년 동양기전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토론 실력을 늘리기 위해 회사 내에 독서대학을 만들었다.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가 제공한 커리큘럼대로 4년간 진행했다. 직원들은 두 달마다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써냈다. 이를 토대로 독서토론도 진행했다. 이청준·이문열 작가 등을 초청해 저자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아침마다 팀별로 ‘3분 말하기’ 시간도 갖는다. 직원들의 말문을 틔우기 위해서다. 이런 문화 덕에 사원들은 경영협의회 안에서 회사의 미래를 놓고 자연스럽게 토론할 수 있게 됐다. 양 사장은 “우리 회사에서는 상사가 지시를 내리기보다 ‘당신은 어떻게 하면 좋겠어’라고 늘 물으니 경력사원이 적응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웃었다.



 ‘사원의 회사’를 만들기 위한 장치는 또 있다. 부가가치 성과 배분제다. 회사에 이익이 나면 이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 가진다. 사업부별로 5%의 영업이익을 올리면 월급의 100%를 상여금으로 지급한다. 이익이 그 이상 나면 그만큼을 직원의 몫으로 돌린다. 이 덕에 직원들은 종이컵 하나도 아껴 쓴다. 청소도 화장실·계단을 제외하고 직원들이 직접 한다. 조 회장과 양 사장, 부사장 3명은 공동비서 한 명을 쓴다. 기사도 한 명이다.



 “위에서 누가 종이컵에 이름 쓰고 하루에 한 개만 쓰라면 짜증나겠죠. 그런데 우린 즐거워요. 스스로 하니까. 쓸데없는 돈 안 쓴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10년째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양 사장은 1984년 동양기전에 입사했다. 그 역시 대우중공업에 다니다 조 회장을 만났다. 이후 창업한 조 회장이 양 사장을 스카우트했다. 대기업을 떠나 갓 창업한 회사로 옮긴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사업이 꿈이던 양 사장은 그 제안을 기회라고 봤다. 동양기전에 다니면서도 이 꿈을 버리지 못했다. 실제로 창업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허탈했지만 그는 생각을 바꿨다. ‘내 돈 갖고 나가서 해야 내 사업인가. 회사 안에서 내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일하자.’



 유압기기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였던 동양기전의 사업영역을 산업기계로 확장시켰다. 5t 트럭 규모의 소형 콘크리트 펌프 트럭을 개발했다. 골목길 다니기가 편리해 소형주택 건설 현장에서 인기가 많았다. 자동차 세차기와 골프카도 만든다. 현재 산업기계의 매출은 전체의 15%를 차지한다.



위기도 있었다. 외환위기 때 매출의 30%가 줄었다. 희망퇴직을 받아 1100명의 직원 중 300명이 그만뒀다. 양 사장은 “그 일을 교훈으로 동양기전은 해외에서 활로를 개척해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직원들이 모두 나서 ‘튼튼한 회사 만들기’에 올인했다”고 했다. 그 결과 현재 매출의 반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외환위기 때만 해도 해외 수출에서 올리는 매출은 전체의 3%에 불과했다. 인도·중국 공장에서의 매출과 국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해 해외로 나가는 물량까지 고려하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에서 거두고 있다. 동양기전은 지난해 수출 2억불탑 상을 수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직원들이 나서서 허리띠를 졸라맸고 큰 어려움 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양 사장은 “당시 경영협의회에서 상여금을 반납하기로 결정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사에 이익이 나자 회사는 이를 모두 돌려주며 신뢰를 쌓았다”고 뿌듯해했다.



 양 사장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매일 읽는 성경책이다. 그리고 미국의 컨설턴트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도 주변 사람들에게 꼭 권한다.



“삶은 환경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그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메시지죠.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생각하며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면서 자신도 성장하는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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