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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창세기부터 ‘킨제이’까지…아내가 달라졌다

중앙일보 2012.05.12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아내의 역사

매릴린 옐롬 지음

이호영 옮김, 책과함께

648쪽, 2만8000원




10여 년 전의 우스갯소리 하나.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인 빌 클린턴과 함께 주유소를 찾았다. 기름을 다 채운 뒤 힐러리가 말했다. “주유소 주인이 어린 시절 내 친구였어.” 클린턴 대통령이 잠시 우쭐했다. “알지? 나랑 결혼한 게 당신에겐 행운이라니까.” 이때 힐러리의 역습. “내가 저 남자랑 결혼했다면, 지금 대통령은 당신이 아니고 저 친구일 걸?”



 신간에 나오는 이 유머가 흥미로운 건 그 직전까지의 상황 때문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낸시 레이건(도널드 레이건의 부인)·바버라 부시(조지 부시의 부인)는 전통적 아내, 고전적 퍼스트레이디에 충실했다. 변호사 출신에 야망 있는 힐러리의 등장은 미국에 “너무도 위협적 존재”(586쪽)로 비쳤다.



 아니나 다를까. 힐러리가 상원의원·국무장관으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그 못지 않은 속도로 아내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그것도 지구촌 거의 모든 곳에서……. 신간은 뜻밖으로 드라마틱하고, 풍요롭다. 지난 2000년간 아내란 남편에 순종하던, “깨지기 쉬운 그릇”이었는데, 모든 게 바뀌고 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을 보라. 아내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장인의 집에서 봉사했다. ‘처녀라는 재산’을 얻기 위한 투자였는데, 한참 뒤인 중세 시절 결혼은 교회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부부 사이의 섹스란 자녀를 낳는 수단으로 한정됐다. 르네상스 이후에도 남녀는 ‘따로 국밥’으로 놀았다.



 17~18세기 청교도 시대 교회는 남녀가 들어가는 문이 달랐고 따로 앉아 예배를 드렸다. 어쩌면 그렇게 조선조 남녀칠세부동석과 닮았는지! 칠거지악(七去之惡)까지 비슷하다. 당시 영국에서 출산은 하늘의 은총으로 받아들여졌으니 아이 못 낳는 여자는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다.



 미국 이주 때 남편을 따라갔던 미국 최초의 여류 시인 앤 브래드스트리트의 기록이 그걸 여실히 보여준다. 당시 여성은 가사와 양육에서 가정의 구심점이자, 외모를 가꾸며 남편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받았다. 이 모든 게 뒤바뀌는 초대형 지각변동이 지난 100년 내외에 발생했다.



 “난 모든 것에 앞서 인간이야!” 입센의 『인형의 집』(1879) 주인공 로라의 사자후(獅子吼)는 여성의 인간 선언이었다. 전쟁이란 요소도 무시 못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아내들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남성의 빈자리를 대신해 기혼여성들이 조선소 용접공 자리까지 영역을 넓혔다.



 여성의 진출과 함께 성혁명도 뒤따랐다. 그 상징이 1953년 킨제이 보고서. 미국 성인의 3분의 1이 혼전 성교, 혼외정사의 경험이 있다는 폭로는 전통적 부부상을 깨는 문화 쿠데타였다. 문사철(文史哲)을 꿰뚫는 정보를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남성 위주의 공식역사에서 은폐돼 온 제3의 목소리다.



 고대 로마의 결혼식 풍속, 중세의 결혼 첫날밤에서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연애 규범, 미국 남부 대농장의 관습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책은 9년 전 나왔던 『아내: 순종 혹은 반항의 역사』(시공사)의 재출간본이지만, 『진화하는 결혼』(스페파니 쿤츠, 작가정신), 『어머니의 탄생』(세라 블래피 허디, 사이언스북스) 등과 함께 읽으면 더욱 입체적인 그림이 떠오를 듯하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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