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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삶과 죽음, 나란히 간다

중앙일보 2012.05.12 00:00 종합 42면 지면보기
정진홍
논설위원
# 피레네를 넘어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를 향해 아주 호젓한 산길을 혼자 걷고 있을 때 홀연 마주한 무덤 하나가 있었다. 일본인 순례자 야마시타 신고의 무덤이었다. 그는 2002년 이곳을 걷다 64세 나이에 숨졌다고 적혀 있었다. 그 무덤 옆에 앉아서 한참을 있었다. 비가 뿌렸다. 그이의 알 수 없는 눈물 같았다. 이처럼 산티아고로 가는 800여㎞에 달하는 길가에는 이 길을 걷다 숨진 이들의 무덤이 적잖다. 팜플로나에서 우테르가를 향해 밤새 구릉지대를 넘어가던 길에서 마주한 이름 없는 프랑스인의 무덤도 있었고, 시라우키에서 이라체로 가던 길가에서 마주한 아르네 스코프 슈미트란 이름의 무덤도 만났다. 1935년생인 그는 지난해 5월 16일에 세상을 뜬 것으로 적혀 있었다. 그런가 하면 카스트로헤리스에서 이테로 데 라 베가로 가는 길목의 모스텔라레스 고개를 넘자마자 마주한 마누엘 피카소 로페스라는 이의 추모비도 있었다. 그는 64년생으로 2008년 이 길을 걷다가 세상을 떴다. 사실 무덤이라 하지만 길가에 돌 둔덕을 만들고 거기 나무십자가 하나 꽂아 놓았거나 작은 추모비를 세워놓은 게 전부다. 그저 이 길을 걷다 세상을 떴다는 것만 기억될 따름이다. 하지만 그들은 비록 육신은 한 줌 흙이 되고 말았지만 그들을 기억하는 이들 사이에선 여전히 살아 있다.



 # 아프리카의 스와힐리족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사사(sasa)의 시간으로 들어간다고 봤다. 사사의 시간에서는 육체적으로 죽은 이마저도 기억되는 한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진정한 죽음은 자마니(zamani) 의 시간에 들어간 이후다. 다시 말해 아무도 그 혹은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은 자마니, 즉 영원한 침묵과 망각의 시간으로 들어가며 그때 비로소 진짜 죽는 것이 된다. 그 길을 걷다 죽었다고 기억되는 것! 아마도 그것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다 죽은 이들의 마지막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이 길 위에서 삶을 마감한 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린 모두 자기 인생길을 걷다 죽는 거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꼭 한 달 전 나는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기 위해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생장피에드포르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다. 그런데 그만 기차를 놓쳤다. 하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 근처의 몽파르나스를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역을 나와서 10분 거리에 있는 몽파르나스로 걸어갔다. 죽은 이들의 무덤으로 가득한 곳, 몽파르나스! 아침 햇살이 가득한 가운데 몽파르나스로 들어서자 수많은 망자가 ‘산티아고 가는 길’로 떠나는 나에게 “그 길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밟는 길” “삶과 죽음이 나란히 가는 길”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들이 나로 하여금 그곳에 들러 이 메시지를 듣고 가도록 기차를 놓치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떠나오기 직전에 서울의 한 시사회에서 본 영화 ‘봄, 눈’도 생각난다. 순옥의 어미(김영옥 분)가 마지막 가는 길 앞에 선 딸(윤석화 분)에게 “환한 빛만 따라가야 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와락 눈물이 났다. 나 역시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서 노란 화살표만 보고 걸어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저마다 삶의 형편은 다를지언정 삶이 가야 하는 방향은 다르지 않다. 에둘러 가든, 곧장 가든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그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 순례자들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밟으며 말이다.



 # “삶은 한순간이다.” 그렇다. 삶과 죽음은 나란히 서로를 마주보고 있을 만큼 짧은 한순간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삶이 영원할 것처럼 쓸데없는 것에 집착하며 그 짧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쩌면 나는 그것을 되묻기 위해 힘겹게 이 길을 걷고 있는지 모른다. 삶과 죽음이 실은 너무나 가깝게 나란히 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말이다.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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