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값싸죠, 색깔 다양하죠, 멋지죠 … 우린 시계업계의 유니클로

중앙일보 2012.05.11 04:00 Week& 8면 지면보기
1 평소에도 양쪽에 색깔이 다른 3개 이상의 시계를 차고 다닌다는 룸바타임의 CEO 드류 디터스.
최근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알록달록한 네온컬러의 시계를 여러 개 겹쳐 차는 게 유행이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고리 모양의 실리콘 팔찌를 여러 개 한 듯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조그만 플라스틱 창 안에서 시계 숫자판이 움직인다. 이 풍경을 처음 본 사람들은 궁금해진다. “시계야, 팔찌야?” 이는 뉴욕의 시계 브랜드 ‘룸바타임(rumbatime)’의 히트상품 ‘디 오리지널’ 시계가 유행시킨 패션 스타일이다.


서울 온 패션시계 룸바타임 CEO 드류 디터스

룸바타임은 2009년 3명의 대학동창이 ‘저렴한 가격의 컬러풀한 시계를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한 회사다. 초기 자본금은 10만 달러. 하지만 제품 출시 직후 뉴욕과 LA를 중심으로 젊은 층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에는 연 매출 200만 달러의 성과를 올렸다.



고리 모양의 단순한 실리콘 시계 하나로 미국의 패션 스타일을 바꾼 성공 비결?



지난달 룸바타임 창립 멤버 중 한 명인 드류 디터스(34)가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리츠칼튼 호텔에서 그를 만나 3명의 남자가 꿈꾸는 ‘펀(fun)한 시계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 기자

장소협조=리츠칼튼 호텔 리츠 바



2 지난달 보석 디자이너 윤화경(왼쪽에서 두 번째)씨의 초대로 한국을 방문한 드류 디터스와 그의 친구들.
시작은 단순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던 조 안토와 제이 하팅톤 그리고 사이클 선수였던 드류 디터스는 2008년 여름 이탈리아로 휴가를 떠났다. 피렌체의 광장 노천카페에서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던 이들은 화제가 ‘시계’에 이르자 일제히 불평을 쏟아 놓았다. 남자들에겐 시계가 거의 유일한 액세서리인데 요즘의 시계들은 너무 비싸다. 왜 요즘은 가격은 저렴하고 색깔이 예쁜 시계가 없을까 등등. 이야기가 점점 길어지면서 ‘그럼 우리가 직접 만들어보자’는 결론이 났다. 이들은 1년 후 실제로 시계 브랜드 ‘룸바타임’을 시작했다. 사업을 위한 자본금은 1인당 3만 달러. 다행히 첫 번째 시계인 ‘디 오리지널’의 반응이 좋아 그 수익금을 전부 재투자할 수 있었다. 1년 후부터 매출이 뛰었고 한국, 일본, 캐나다 수출에 성공했다. 곧 남미의 콜롬비아와 중국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저렴한 가격대의 시계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얼마나 하나.



“룸바타임의 평균 가격대는 30달러(약 3만4000원)다. 최고가라고 해도 125달러(약 14만2000원)를 넘지 않는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한 2009년엔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나빴다.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시계가 정말 필요했다. 가격은 저렴한데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색깔이 다양하다면 한 사람이 2~3개씩 살 테고, 그걸 팔찌처럼 여러 개 겹쳐 차면 새로운 패션 스타일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저렴한 디자인 시계라면 이미 ‘스와치’라는 유명 브랜드가 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스와치는 분명 좋은 시계였고 지금도 브랜드 가치는 존중하지만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좀 둔감해진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의 욕구를 읽지 못하고 있다.”



-룸바타임만의 새로운 개성이란.



“어떤 옷과 조합해도 잘 어울리고 개성 있는 스타일까지 창조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고 싶다. 때문에 룸바타임 시계들은 팔찌처럼 다양한 컬러와 독특한 디자인을 추구한다. 값비싼 시계 하나를 1년 내내 차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대의 시계를 색색으로 다양하게 구비해 두고 그날그날에 따라 바꿔 차면 일상이 더 재미있어지지 않겠는가. 색깔을 표현하는 데 자유롭고 장난감처럼 부담 없는 실리콘 소재를 주로 이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특한 디자인의 시계’라고 하기엔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다.



“우린 ‘디자인을 덜 하는 게 더 많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한 디자인은 어떤 옷과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또 누가 차더라도 부담 없고 친근하다. 말하자면 우린 룸바타임이 시계 업계의 ‘유니클로’ 같은 존재이길 원한다.”



-기능적인 특징이 있다면.



“항상 시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차는 방법을 찾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시계에는 신용카드 전자칩을 넣을 수 있어 지갑 없이 시계 하나만 차고도 쇼핑과 이동이 가능하다. 또 어떤 시계에는 혈액형과 개인 병력 등을 기록할 수 있어 갑작스런 사고를 당했을 때 유용하다. 사이클을 타고 여행을 하면서 늘 지갑의 위치와 불의의 사고를 염려했던 내 경험이 아이디어가 된 경우다.”



-디자인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우리 3명이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함께 의논한 후 최종 결정한다. 각각의 시계에 붙은 이름은 뉴욕 시내에 있는 거리 이름이다. ‘각자 자신이 사는 거리 이름을 시계에 붙이자’는 제이의 아이디어였다. 납작한 막대기를 손목에 탁 치면 동그랗게 면이 말리는 슬랩 시계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이용한 내 아이디어다. 미국에서는 한때 이런 손목 장난감이 크게 유행했다. 탁탁 소리가 수업을 방해한다고 착용을 금지시킨 학교도 있을 정도였다. ‘음, 나처럼 이 시계를 보며 옛날 생각을 하는 사람이 100만 명은 넘겠군’ 하는 생각에 시계로 만들었다.”



-홍보수단으로 유튜브를 자주 활용한다. 3명의 CEO가 직접 출연한 코믹 영상도 있더라.



“뉴욕은 광고비가 비싸다.(웃음)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하려면 그들이 즐기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갈수록 집중력이 약해지고 있다. 작동법이나 효능에 대해 쓴 글을 자세히 읽기보다 비디오로 간단하게 보고 이해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경영도 뭔가 다르게 할 것 같다.



“물론. 우린 조직 운영도 남들과 다르게 한다.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근처에 있는 사무실 상주 인원은 평균 5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외의 인원은 재택근무를 한다. 각자 상황과 스케줄에 따라 유동성 있게 움직인다.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통해 모든 작업 과정을 모든 직원이 공유하기 때문에 일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여러 개의 시계를 겹쳐서 차는 스타일을 유행시켰다. 알록달록 서로 다른 색깔의 시계들을 멋지게 조화시키는 비결은.



“우리끼리 ‘컬러 블로킹’이라고 부르는 방법인데 이웃하는 색깔끼리 강렬한 대조를 이루도록 하는 게 눈에도 잘 띄고 감각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검정&흰색&빨강, 오렌지&연두&흰색 이런 식이다.”





드류 디터스와 그의 친구들이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낙지를 먹는 장면’(왼쪽)과 ‘관광버스 속 노래방 장면’.




CEO 디터스의 한국여행 일주일 … 산낙지·폭탄주서 창조 영감 얻다



룸바타임의 CEO 드류 디터스의 이번 한국 방문은 보석 디자이너 윤화경씨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윤씨는 뉴욕의 최고급 백화점인 버그도프 굿맨에 입점한 보석 브랜드 ‘샐리 손’의 디자이너 겸 대표다. 디터스와 윤씨는 1년 전부터 두 브랜드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디터스는 “1개에 3~4만원 짜리 실리콘 시계와 개당 300만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보석 브랜드가 협업한 시계, 어떤 모습일지 상상만 해도 재밌지 않느냐”며 눈을 반짝였다. 결과물은 5월 말에 있을 ‘미국 라스베이거스 보석 쇼’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윤씨와 디터스는 협업을 기념해 오래전부터 ‘디자인 영감을 위한 여행’을 계획했고 윤씨가 한국행을 제안했다. 본격적인 여행에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터스와 윤씨의 예술가 친구 6명이 동행했다. 레이디 가가의 앨범 사진·뮤직비디오를 작업한 피터 헹켓과 씨씨 샌더, 다큐멘터리 사진가 재스퍼 리쉔, 패션 잡지·광고 캐스팅 디렉터인 로저 이니스, 프라이빗 럭셔리 인터넷 쇼핑몰 길트(GILT)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레아 박, 한식 컨설턴트 정은정 씨가 그들이다. 인터뷰 당시 디터스는 “이번 여행의 목적은 각자 실력을 발휘해 서로의 아이디어를 자극하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경주-부산을 잇는 일주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가기 전, 다시 만난 6명의 아티스트는 “한국은 클래식을 존중하며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높고 건강한 음식과 신선한 에너지로 가득한 나라”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들이 각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꼽은 것은 산낙지, 관광버스 안 노래방 시설, 폭탄주, 김치였다. 유튜브에서 검색어 CYCY SANDER로 들어가 ‘ROAD TRIP SOUTH KOREA 2012’를 보면 이들의 한국 여행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