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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기행 ⑤ 추사 김정희

중앙일보 2012.05.11 03:30 6면
추사 김정희는 권력을 잡은 안동 김씨 세력에 밀려 1840년 9월 제주도의 대정현에서 위리안치되는 형벌을 받게 된다. 위리안치란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울타리를 치고 생활해야 하는 형벌이다. [사진 이영관 교수]



유배지서도 대학자의 인품 지켜 제자들과 백성 존경 한 몸에

조선왕조를 빛낸 위인들이 충청도 땅에서 일궈낸 역사적 흔적들은 리더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위인들의 발자취를 답사하다 보면 세계시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한국형 리더십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이영관 교수의 조선 리더십 충청도 기행’ 시리즈는 고불 맹사성,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이순신 장군 순으로 소개한다.



장찬우 기자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추사((秋史) 김정희는 1786년 충남 예산의 용궁리에서 태어났다. 34세 때인 1819년 과거시험 대과에 합격해 출세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조선의 북학을 집대성했고 추사체를 완성했다.
추사 김정희는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를 비롯 호조참판 김귀주, 우의정 김관주 등을 배출한 경주 김씨로 1786년 예산의 용궁리에서 태어났다. 15세 무렵 당대의 석학인 박제가로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청나라의 학문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809년 사마시에 합격했고, 동지부사로 임명된 부친 김노경과 함께 자제군관으로 중국의 연경을 방문해 청나라의 학자들과도 폭넓게 교류했다. 자제군관이란 외국에 파견되는 사신의 아들이나 동생이 동행하는 제도로 공식적인 외교업무에서 벗어나 현지문물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34세 때인 1819년에는 과거시험 대과에 합격하여 출세의 기반을 마련했고, 그의 부친도 같은 해에 예조판서가 되면서, 김정희의 집안은 과거의 영화를 회복했으며 20여 년을 무탈하게 지냈다.



 그러나 1840년 경주 김씨와 라이벌 관계였던 안동 김씨의 김우명이 대사간이 되고, 김홍근이 대사헌에 임명되면서 김정희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김정희는 동년 9월 제주도의 대정현에서 위리안치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위리안치란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울타리를 치고 생활해야 하는 형벌이다.



 유배를 가던 중 해남 대둔사에서 초의선사와 나눈 이야기로 짐작해 보면, 김정희는 제주로 유배를 떠나면서도 대학자의 품위를 잃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초의선사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대웅보전’의 기존 현판을 떼어내고 자신이 써준 현판으로 바꾸라고 권할 정도로 기세가 당당했다고 한다.



 지금도 대둔사에는 그가 쓴 ‘무량수각(无量壽閣)’ 현판이 남아있다. 차를 좋아했던 김정희는 초의선사의 다선일체에 큰 감명을 받았고, 그와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불교 교리를 깊이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는 학자로서 도덕적인 인간으로서 존경 받을 삶을 살았고, 조선의 양식 있는 백성들은 그런 그에게 끊임없는 찬사를 보내주었다.



 세상살이란 무릇 흐르는 물과 같고 권력과 재물을 좋아하는 인간들의 탐욕은 보편적이어서, 권력을 휘두르거나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힘 있는 자들에게 사람들은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흩어진다.



 그런데 이 보편적 법칙이 김정희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많은 제자들과 유배지의 주민들은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는 비록 유배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삶이 그래도 한편으로는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에 충실했구나 하는 생각에 기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세한도(歲寒圖) 또한 이 시기의 작품이다. 세한도는 그가 귀양살이 하는 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제자 이상적에게 보답으로 그려준 그림이다. 이상적은 ‘세한도’를 받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최근 한국사회는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나라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데,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포기해버린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위기에도 잘 견뎌낼 뿐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인생을 낭비하기보다 대안을 모색하는데 보다 적극적이다. 김정희에게 배워야 할 교훈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아닐까 싶다.



이영관 교수



196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한양대학교 관광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기업윤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학교 호텔스쿨 교환교수, 국제관광학회 회장, 한국여행작가협회 감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순천향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스펙트럼 리더십』『조선견문록』『한국의 아름다운 마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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