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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파란 눈 기사 … 미국서 첫 한국식 입단대회

중앙일보 2012.05.11 00:21 종합 30면 지면보기
AGA 산하엔 80개 도시에 100개의 바둑클럽이 있고 정기적으로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은 2100명. 아시아계를 합해 미국 바둑팬 수는 70만~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사진은 미국 최초의 프로입단대회 LA 지역 예선을 겸한 ‘2012 카슨 오픈’ 도중에 김명완 9단의 해설을 듣는 대회 참가자들의 모습.


명문 칼텍의 수학교수 리처드 돌렌(Richard Dollen)은 서양사회 최초의 9단인 마이클 레드먼드를 키워내고 미국바둑협회(AGA)의 조직과 보급에서 큰 역할을 해낸 인물로 미국 바둑계에선 ‘전설’로 통한다. LA에서 만난 그는 바둑에 그토록 헌신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바둑에 매혹됐고 그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바둑판 위에선 나쁜 것도 항상 나쁜 게 아니다. 바둑은 나에게 일희일비하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라고 가르쳐 준다.”

한국기원, 미 바둑협 손 잡고
8곳서 예선 치른 후 2명 뽑아



왼쪽부터 대회 후원자인 에릭카슨, AGA 의장 앤드루 오쿤, LA예선전 우승자 캘빈 선.
 AGA는 1930년 설립돼 한국기원보다 역사가 길다. 산하에 100개의 클럽이 있는데 이곳엔 돌렌과 비슷한 사람이 모여 있다. 아시아 문화, 그중에서도 바둑에 신비감을 느끼고 매료된 사람들이다. 사업을 접고 미국 바둑을 키우는 데 대부분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는 이사회 의장 앤드루 오쿤이 그렇고, 매년 자기 이름을 딴 바둑대회를 후원하는 LA의 부호 에릭 카슨도 그렇다. 3년 전 미국에 정착해 바둑 보급활동을 해온 김명완 9단이 AGA와 한국기원을 연결했다. 미국에 한국식 프로제도를 도입해 발전의 기폭제로 삼자는 그의 아이디어에 AGA와 한국기원이 수긍하고 힘을 모으기로 했다.



 지난달 27, 28일 양일간 LA의 한국문화원에서 ‘2012 카슨 오픈’이 열렸다. 예년과 달리 이 대회는 제1회 미국프로입단대회 LA 지역 예선을 겸했다. 한국기원에서 양재호 사무총장, 조훈현 9단, 유창혁 9단, 김효정 3단(여류기사회장) 등이 이곳으로 날아왔다. 대한바둑협회 이사인 박장희 기도산업 회장, 한국기원 이사인 서대원 전 헝가리 대사도 참석했다. 서양권에서 사상 최초로 열리는 프로 입단대회이기에 이 대회는 훗날 역사적인 이정표가 될 수도 있다. 조훈현 9단은 ‘시작이 반’이란 한국 속담으로 미국 바둑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 그러나 카슨컵 역시 ‘한국 대 중국’이란 세계바둑의 축소판이었다. 우승은 중국계 캘빈 선(14세). 준우승도 중국계였고 한국계는 4, 5위를 차지했다(미국 시민인 1, 2위는 입단대회 본선에 나간다).



 유럽과 달리 미국에선 파란 눈의 고수를 구경하기는 어려웠다. 한·중·일 이민자들과 그 자녀들의 실력이 너무 출중한 탓이었다. 바둑을 미국 주류사회에 보급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돌렌은 “바둑은 조화(調和)다”라는 우칭위안의 설파에 매료되어 있었다. 승부보다는 예도적인 접근이 서양에선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밤 늦도록 미국 바둑 보급과 입단대회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미국의 이창호’를 찾으려면 초등학교부터 찾아가야 하는데 대다수 학교는 아직 바둑 자체를 모른다. 또 바둑의 수(手)가 아닌 철학을 설명하려면 영어는 또 얼마나 잘 해야 하나.



 입단대회 본선은 7월의 마지막 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다. 8개 지역의 예선을 통과한 16명 중 단 2명이 입단에 성공한다. 겨우 2명이라니! 첫 해인 만큼 10명쯤 시원하게 넓힐 수는 없었을까. 미국 입단대회는 문화와 문화가 만나고 녹아드는 어떤 ‘접점’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동시에 한국과 미국의 바둑인들에겐 수많은 난관과 연구과제를 안겨준 대회였다.



LA=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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