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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20년 된 사장실 소파가 주는 교훈

중앙일보 2012.05.11 00:11 종합 32면 지면보기
임미진
경제부문 기자
사장실이래야 16㎡(5평)나 될까. 책상과 손님용 탁자, 탁자를 둘러싼 1인용 천소파 5개가 가구의 전부였다. 올이 굵은 회색 코듀로이 천을 두른 소파는 요즘 유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1992년에 샀으니 20년이 됐다 했다.



 서울 충무로5가 민국저축은행. 72년 상호신용금고로 문을 연 저축은행 1세대다. “큰 곳도 줄줄이 나가떨어지는데 어떻게 40년을 버텼느냐”는 의문이 소파에서 풀리는 듯했다.



 유행이 지난 소파에 앉은 양현근(56) 대표는 유행을 이야기했다. 저축은행을 둘러싼 세간의 논의가 유행처럼 돌고 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 셀 수 없는 신용금고가 문을 닫자 ‘강소 상호신용금고’라는 단어가 나왔다. “서민 금융에 힘쓰는 소규모 신용금고가 업계의 살길”이라고들 했다.



 경기가 살아나자 얘기가 달라졌다. 금융 수장이 바뀔 때마다 새 정책이 나왔다. 예금자 보호한도를 늘리고(2001년) 이름을 상호저축은행으로 바꿔주더니(2002년) 대출한도를 완화하고(2005년) 인수합병까지 부추겼다(2008년). 저축은행들은 무섭게 덩치를 불렸다. 그러지 못하면 바보 취급을 받았다. 제 덩치에 눌린 대형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문을 닫은 지금, 다시 ‘강소 저축은행론’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본분에 맞게 서민 금융에만 집중하도록 저축은행 이름을 상호신용금고로 되돌리자”는 주장까지 나온다.



 유행과 관계없이 양 대표는 본분을 알고 있었다. “저축은행은 작고 단순할 수밖에 없다. 서민 돈을 맡아 최대한 안전하게 굴리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대출 위험을 줄이기 위해 모든 결재를 직접 한다. 예금이 많이 몰리면 금리를 내려 수신을 줄인다. 그렇게 40년을 버텼다.



 민국저축은행뿐만이 아니다. 저축은행 1세대로 지금껏 살아남은 나머지 업체도 모두 그렇다. 대기업 계열인 동부저축은행을 빼면 경남 통영시 조흥저축은행, 충북 제천시 대명저축은행, 부산 국제저축은행의 총자산은 2000억원 안팎이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분수를 지켰다.



 금융당국은 지금 “저축은행은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유행을 만들어 저축은행을 들쑤셔온 게 바로 당국이었다. 수장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는데 저축은행이 중심을 잡고 업의 본질을 지키는 게 쉽겠는가. 소파는 20년째 제자리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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