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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아 여론 女論] 소중한 여권

중앙일보 2012.05.10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여학교 설시(設施) 찬양회’는 북촌 지역의 상류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여성단체다. 이들은 1898년 9월 1일 소위 한국 최초의 여권선언문으로 알려진 ‘여권통문(여학교 설시 통문)’을 발표했다. 그 이후에도 여성들의 여권신장을 위한 여러 운동 및 단체의 활동이 크고 작은 규모로 지속됐다.



 아래 글은 대한부인회가 창립된 것에 대한 ‘황성신문’의 논설이다. 이 글은 서구에서는 남녀동등권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호주와 같은 나라의 경우에는 이미 여성들에게도 선거권까지 부여했음을 소개함으로써 조선 여성의 지위 향상도 시급함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정무에 대하여도 가히 남자와 동일한 자격을 향유한 것이라고 그 국왕에게 참정권을 청구한 사실이 있고 이후 이 논의가 구주(歐洲) 전국에 전파하여 혹 국회의장의 일대변론도 있으며 혹 학자사회의 일대저술도 있으며 금일 호주 정치에는 부인의 선거권을 허여(許與)한 일도 있다 하니…아한(我韓) 부인의 사회를 보건대 앞서 서술한 바 상고몽매의 시대와 같이 여자일신의 지위권한이 호발(毫髮)의 자유상태가 없고…인류사회의 일개 관상물이 되어 족히 인격의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귀한 부인들이 먼저 뜻을 펼쳐 일반 여자사회에 관한 덕육, 지육 및 실업, 공예와 자선사업의 목적으로 우매한 부인 여자를 이 차례로 훈도하여….”(‘논(論)대한부인회의 창기(創起)’, 황성신문, 1905.8.14)



 그러나 서구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요구한 것과 달리 당시 조선의 여권 신장 방향은 여성의 교육 문제에 제한되어 있었다. 즉 여성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우선 여성들이 계몽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여학교 설립이 주 목표였던 ‘여권통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일단 여성들이 교육받고 깨우친 후에야 권리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사고는 당시 한국에서 여성들의 참정권 획득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일로 여겨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시절을 지나 해방이 되고 여성들에게도 선거권이 보장되어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라는 민주적 선거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이 1948년 5월 10일이다. 올해부터 5월 10일을 ‘유권자의 날’로 제정하여 선거의 중요성을 알리고 주권의식을 제고한다고 한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있는, 매우 중요한 ‘유권자의 해’다. 지난 총선 때와 같은 ‘20대 여성 투표율 8%’라는 억울한 누명 쓰지 않도록 대선 때는 모든 여성 유권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으면 싶다. 100년 전 ‘국민’ 취급도 못 받던 여성유권자가 지금은 얼마나 큰 힘을 지녔는지를 보여줄 기회이다.



이영아 명지대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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