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객 돈 들고 튄 저축은행 회장
김찬경 미래저축 회장, 은행서 203억 인출 뒤 중국행 밀항선 타다 잡혀
1983년엔 가짜 서울법대생 … 교수가 결혼 주례도

이때까지만 해도 김 회장의 밀항은 수사를 피하기 위한 ‘단순 도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3일 서울 강남의 우리은행 지점에서 김 회장이 현금과 수표 203억원을 인출한 사실이 새로 드러났다. 김 회장 개인 돈이 아닌 저축은행 법인통장에 있던 돈이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사와 고객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고객 돈을 갖고 밀항을 시도하는 게 일부 저축은행 오너의 수준”이라고 말했다.
예금 인출 과정도 치밀했다. 우리은행 지점 측은 2일 오후 미래저축은행 자금 담당자로부터 “내일 수시입출금식 기업예금(MMDA) 통장에서 200억원을 인출할 테니 준비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실제 인출 요청은 다음 날인 3일 오전 이뤄졌다. ‘운영자금과 유상증자 대금’이라며 현금 135억원과 수표 68억원을 요구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전액을 현금으로 요구하면 의심을 살까 봐 수표를 섞어 인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금이 부족했던 은행 지점은 다음 날 본점 자금부에서 현금을 지원받아 내줄 돈을 마련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운전기사와 함께 이 돈을 자신의 승용차에 옮겨 싣고 곧장 은행을 떠났다. 몇 시간 뒤 그가 나타난 곳이 궁평항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산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은 5일 해경으로부터 김 회장의 신병을 넘겨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김 회장은 수표 68억원을 이미 여러 사람의 명의로 여러 금융회사에 나눠 입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 135억원의 행방에 대해선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3자 명의로 빼돌리거나 해외로 송금했을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개인사는 업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이나 공식 행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사업을 해 모은 돈으로 90년대 말 제주 지역의 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업계 7위권의 저축은행으로 키웠다. 미래저축은행의 총자산은 지난해 말 1조7594억원이지만 한때 계열사를 거느리며 2조원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이 저축은행은 카메룬 다이아몬드 사건으로 알려진 씨앤케이인터내셔널의 2대 주주다.
그가 ‘은둔’으로 일관한 건 가짜 서울대 법대생으로 행세하다 83년 들통났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당시 미팅과 학회 등 각종 학내 활동에 얼굴을 내밀면서 과대표까지 지냈다. 학과장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지만 졸업 앨범 제작 과정에서 가짜임이 들통났다. 그럼에도 이후 서울대 법대생이라고 속이고 가정교사를 했다. 그의 아들은 지난해 6월 벤츠 승용차를 몰고 음주 상태에서 승용차 7대를 잇따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