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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교회 금융인 모임 '소금회' 멤버 살펴보니

중앙일보 2012.05.07 01:08 종합 2면 지면보기
‘금융계의 칭기즈칸’으로 통했던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중앙포토]
저축은행 업계의 신화가 한꺼번에 무너졌다. ‘칭기즈칸’ ‘마당발’ 임석(50) 회장이 이끌던 업계 1위 솔로몬저축은행, ‘M&A 귀재’ 윤현수(59) 회장이 이끌던 업계 5위 한국저축은행이 6일 동시에 문을 닫았다. 업계 관계자는 “업계 1위로 저축은행의 상징인 솔로몬이나 승승장구하던 한국이 무너진 건 저축은행 전체가 무너진 것과 같은 충격”이라고 말했다.


솔로몬저축은행 회장 흥망사
부실 저축은행 사들여 1위로키워 … ‘금융 칭기즈칸’ 임석의 몰락

 솔로몬은 업계의 ‘칭기즈칸’으로 불린다. 주로 인수합병(M&A)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덩치를 키웠다. 총자산 약 5조원. 2위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독보적 1위 업체였다. 임석 회장이 저축은행 업계에 입문한 건 2002년. 1999년 부실채권추심회사인 ‘솔로몬신용정보회사’를 설립한 뒤 2002년 ‘골드저축은행’을 인수해 사명을 솔로몬으로 바꿨다. 이후 M&A를 거듭하면서 회사 덩치를 급속도로 키웠다. 임석은 마당발로 통한다. 전남 무안 출신으로 김대중(DJ) 정권의 핵심 실세들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소망교회 금융인 모임인 ‘소금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치 실세 들과 잘 지내는 것으로 알려진 데다 마케팅 감각도 뛰어나 계속 M&A 기회가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정권의 저축은행 정리작업도 솔로몬에 기회였다. 2005년 부산 한마음저축은행(현 부산솔로몬저축은행)과 2006년 전북 나라저축은행(현 호남솔로몬저축은행), 2007년엔 경기도 소재 한진저축은행(현 경기솔로몬저축은행)을 사들이며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2008년엔 KGI증권까지 인수해 솔로몬투자증권으로 출범시켰다.



임 회장 스스로도 “칭기즈칸처럼 영역을 넓혀 세계적 금융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대내외에 선포하던 때다. 2010년 한 경제부처 장관이 사석에서 임 회장을 두고 “젊은 친구가 대단하다. 사업 수완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칭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솔로몬을 무너뜨린 것 역시 PF와 M&A였다. 부실저축은행을 무리하게 떠안으면서 수천억원대 부실이 생겼다. 한때 총대출의 절반 가까이를 PF에 ‘몰빵’한 것도 침몰을 향한 방아쇠가 됐다. 2008년 이후 건설경기가 급속히 가라앉으며 부실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PF 사업의 연체율이 급증하며 2008년 말 5.25%였던 부실채권비율(고정 이하)은 지난해 13.98%로 늘었다.



 임 회장은 최근 본지 기자를 만나 “금융 당국이 일절 지원도 없이 부실저축은행을 강제로 떠넘기는 바람에 (솔로몬도) 어려워졌다”며 “그래 놓곤 이제 와서 모른 척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물론 PF 대출을 늘린 것은 판단 잘못이었지만 몇 달만 시간을 줬어도 회사를 정상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한편 검찰은 임 회장이 자회사를 고의 폐업해 청산금을 받은 뒤 이를 은닉하는 등의 수법으로 수십억원을 빼돌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진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M&A 귀재 윤현수 회장도 무너져=같은 날 영업정지 된 한국저축은행의 윤현수 회장 역시 ‘M&A 1세대’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던 인물이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수석 졸업한 그는 산업은행·한외종합금융을 거쳐 96년 코미트M&A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M&A 시장에 진출했다. 1998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국 방문길에 동행하기도 했다. 2000년 진흥상호금융금고를 인수하며 저축은행 업계에 뛰어들었다. 경기·영남저축은행과 한국종합캐피탈까지 잇따라 인수하며 사업 확장에 나섰지만 역시 PF 대출 부실에 발목이 잡혀 좌초했다. 지난해 말 감독 당국의 적기시정 조치 대상이 돼 외자 유치, 지분 매각 등으로 돌파구 찾기에 골몰했지만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두 회사가 모두 몸집 불리기에 집중한 나머지 위험 관리에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나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닌데 무모하게 몸집을 키우고 PF 대출을 확대했다”며 “경영 실패와 분식회계 등의 책임을 철저히 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신화 몰락 이면엔 금융 당국의 정책은 물론 감독 실패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말로는 서민금융을 하라면서 규제를 확 풀어주는 바람에 지나치게 저축은행에 돈이 몰리고 덩치가 커졌다는 것이다. 돈은 넘치는데 마땅히 굴릴 데가 없으니 저축은행들로선 당시 호황이던 PF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서강대 경제학과 박정수 교수는 “부실저축은행을 (대형저축은행에) 떠안기고 지점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걸 묵인해 준 감독 당국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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