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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지어 암 걸렸다’는 환자, 그 마음부터 고쳐줘야

중앙일보 2012.05.07 00:16 종합 31면 지면보기
의료와 인문학을 주제로 지난 3일 서울 신촌 연세대 보건대학원에서 의사들과 예술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작곡가 김영경씨, 서홍관 국립암센터 본부장, 정희두 ㈜헬스웨이브 대표, 소설가 김훈씨. [김도훈 기자]


“얼마 전에 태백의 규폐병원에 갔는데 늙은 광부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의 병에는 평생의 스토리가 들어가 있다. 의사가 ‘담배 피지 말라’는 말만 해서는 도저히 (병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의사가 단지 죽음과 싸우는데 그친다면 그건 백전백패다.”

‘의료의 인문학적 접근’좌담회



 소설가 김훈씨는 지난 3일 이렇게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본부장 전병율)와 연세대 보건대학원(원장 손명세)이 주최한 ‘질병과 고통, 의료의 인문학적 접근’ 좌담회에서다.



이 자리에는 소설가, 작곡가, 문학평론가 같은 예술계 인사, 그리고 독특한 경력의 의사들이 참석했다. 시인인 마종기 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의대교수, 사단법인 현대미술관회 회장인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 외과의사 출신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정희두 ㈜헬스웨이브 대표, 베토벤 연구가인 조수철 서울대 의대 교수 등 인문학에 친밀한 의사들이다.



 그 중 마종기 시인은 “내 시가 겸손하다거나 정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의사가 된 뒤 그는 1966년 미국에 건너갔다. 4개월 만에 아버지(마해송 동화작가)가 별세하는 일을 겪은 데다 타향살이의 고독, 또 환자들이 겪는 고통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시를 썼고, 거기서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에 매년 8편의 시를 발표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실행했다. 그는 2002년 귀국해 모교인 연세대 의대에서 ‘문학과 의학’을 가르쳤다. 2010년엔 문학의학학회를 만들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외과 전문의인 정희두 대표는 환자들에게 설명을 잘 하기 위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수술 동의서를 받을 때 수술과정이나 부작용 등을 그림을 그려 설명하면 환자나 보호자들이 훨씬 잘 이해했다”면서 “레지던트 시절 수술보다 동의서 받는 일이 더 좋았다”고 말했다. 만화로 설명하는 데 한계를 느껴 2006년 아예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를 차렸다.



그의 회사에서는 병원의 전자차트등에 사용되는 ‘설명 처방’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정 대표는 “병원마다 제작하는 동영상들을 모아 의료기관 콘텐트 계(契)를 만들었고, 이를 위키피디아처럼 전 세계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이성낙 가천대 명예총장(피부과)은 아주대 의대 초대학장 시절 국내 의대 중 처음으로 ‘의학과 예술’ 등 인문학을 접목한 강의를 개설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한국초상화와 탈에 나타난 피부질환을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의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서 생기는 의료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를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는 ‘인간’이기 때문에 환자를 다루는 의학은 당연히 자연과학보다 인문학에 가깝다는 주장도 나왔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시인인 서홍관 국립암센터 본부장은 “자신이 죄를 지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환자들, 콜레스테롤이 높다고 해도 약을 안 먹는 환자들을 설득하기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인문학 교육을 통해 환자에게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제대로된 진료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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