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칼럼] 돌아온 푸틴의 선택

중앙일보 2012.05.07 00:00 종합 37면 지면보기
찰스 테넉
유럽의회 대변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7일 러시아 대통령에 세 번째로 취임한다. 비록 지난 4년 동안 실세 총리로 군림하긴 했지만 푸틴이 다시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러시아가 과거 그의 통치 시절처럼 ‘강하고 질서 있는 나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로 보인다. 다당제와 대드는 야당 정치인이 없는 시절로의 복귀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러시아 국민은 이전 상태로의 회귀를 바라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서 푸틴 총리에게 후보를 양보하고 자신은 고문으로 물러나겠다는 권력 주고받기 발표, 부정선거 시비 속에 치러진 지난해 12월 총선과 올해 3월 대선, 크렘린(대통령궁) 패거리들이 벌인 엄청난 축재 등에 대한 국민의 차가운 반응은 푸틴과 상의하달식 정부 시스템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푸틴의 정치적인 미래는 이러한 압력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서방의 대응도 그가 자유주의적 개혁을 촉진해 정치적으로 생존할지, 아니면 KGB(국가보안위원회, 소련의 비밀경찰 및 첩보조직)를 동경하는 독재자의 길을 선택해 항의시위에 시달릴지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다.



 2009년 발생했던 영국 투자은행 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사망 사건에 대한 서방의 대응 방식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마그니츠키는 여러 부처의 공무들이 서로 짜고 법인세 환급자료를 허위 제출하는 방식으로 거액을 횡령했다고 폭로했다가 감옥에서 의문사했다. 러시아 당국은 어이없게도 그를 사후 기소하기까지 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의 사망에 관련 있는 사람들은 모두 승진하거나 훈장을 받았다.



 이에 미국 의회는 최근 마그니츠키 구금·사망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60명에 대해 해외자산을 동결하고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 중이다. 찬성론자들은 새 법안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폐기를 추진하고 있는 잭슨-배닉 수정법(냉전 당시 만든 대소련 교역 제한법)을 대체하길 원한다. 이럴 경우 러시아와의 교역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악명 높은 인권 탄압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별도 제재할 수 있게 된다.



 영국 하원도 최근 미 의회에 제안된 것과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부유한 러시아인들이 런던을 찾아 거액을 투자하거나 지출하고 있음에도 영국 정부는 이에 부응해 비공식적이고 비공개적인 입국금지 인물 명단을 작성 중이다. 캐나다 의회도 비슷한 조치를 제안했다. 유럽 의회도 회원국들에 동일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서방 세계는 기본적인 가치에선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푸틴의 러시아가 거부한 바로 그 가치 말이다. 이는 러시아를 비롯한 육체적·정신적 인권 침해를 다반사로 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포함해 인간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나라에 좋은 경고가 될 것이다. 서방은 러시아나 보통 러시아인이 아니라 서방이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인권침해 사건에 개입한 개인만 골라 제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런 조치는 정치적 야망을 품었다가 9년째 수감 중인 전직 석유 재벌 마하일 호도르콥스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푸틴은 과거 자신을 강한 남자이자 안정의 상징, 그리고 혼란에 대응하는 인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현재 푸틴식 통치는 러시아의 불안정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중산층이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 그리고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을 정도다. 서방은 푸틴에게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면 과감하면서도 영구적인 민주 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이는 서방의 기회이자 의무다.



찰스 테넉 유럽의회 대변인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