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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칼럼] 119 소방관, 그 무모함과 숭고함 사이

중앙일보 2012.05.01 03:30 11면 지면보기


학창시절 전국을 농구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슬램덩크’라는 만화에서 한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멋진 수비와 파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같은 의도로 시작한 큰 차이의 다른 결과를 표현해주는 짧은 명언이라 할 수 있겠다. 119와 멋진 수비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119소방관들은 출동 현장에서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항상 직면해 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을 뛰어들고, 엄청난 높이에서 목숨을 걸고 로프를 탈 때도 있으며, 붕괴되는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아니 뛰어들어야 한다. 오로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



 그러다 보니 거의 매년 순직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잊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는 2001년 홍제동 화재사건, 9명의 소방관이 구조 활동 중에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난해 12월에도 평택 가구화재 현장에서 두 명의 소방관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무모하다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숭고(崇高)하다고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Maslow)의 인간욕구 5단계 이론’에서 인간 삶의 기본이 될 수 있는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애정의 욕구(3단계)보다 더 근본적인 자기 자신의 안전 욕구(2단계)를 거부하고 타인의 안전을 위해 뛰어든 그들은 어쩌면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낮은 차원(근본단계)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고는 그 보다 높은 차원의 욕구는 실현하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119소방관들은 제복을 입고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근본적이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욕·수면욕 등 생리적 욕구(1단계)는 잊어버린다. 졸리고 배고픈 상태에서도 타인의 안전 욕구(2단계)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정작 본인의 생리적 욕구·안전욕구는 잊는다.



 굳이 심리학적 이론을 거론하지 않아도 119소방관의 목숨을 건 현장 활동은 ‘숭고함’이상의 높은 뜻으로 국민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이러한 안타까운 순직사고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소방방재청에서는 전국 소방서를 대상으로 하는 ‘2012년도 국민생명보호정책’과 ‘현장안전관리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제 119소방관의 안전은 스스로 챙길 때다. 농구선수가 파울이 아닌 멋진 수비를 하기 위해서는 체력은 기본이고 풋워크를 비롯한 수많은 훈련을 한다. 파울과 멋진 수비가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그 경계는 생각보다 두껍고, 심판은 그 경계를 정확하게 잡아낸다. 우리 119소방관들도 무모함과 숭고함의 경계를 정확하게 잡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체력은 기본이고 조직적인 안전관리·사고방지 교육훈련·무사고 실천 결의대회 등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다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취지에서 시작된 정책이 ‘현장안전관리정책’이다.



 이 정책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전국 119소방관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고,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시행원년의 시행착오가 피드백으로 환류돼 전국 119소방관의 안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이보다 더 크고 좋은 일이 있을까?



 어쩌면 119 현장 활동에 있어 119소방관의 무모함이 숭고함의 광의개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더 이상 희생을 치르는 숭고함 없이 멋진 수비를 해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진석 천안동남소방서 예방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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