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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 문재인 … ‘정치 프로’ 이해찬·박지원에게 휘둘렸나

중앙일보 2012.05.01 01:28 종합 5면 지면보기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달 26일 부산시 연제구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답변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그동안 야권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해결사’로 통했다. 지난 3월 22일 밤 그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보좌관의 여론조사 조작이 들통 난 뒤에도 출마의 뜻을 굽히지 않아 선거연대를 한 민주당이 난감해 하던 때였다. 문 고문은 민주당 한명숙 대표의 권한을 위임받아 이 대표를 만났다(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 대표는 다음날 후보에서 물러났다.


이·박 연대 중재 역할에 민주당 내 비난 쏟아져 곤혹

 그 보름 전인 3월 8일 문 고문은 부산의 지역구 일정을 취소하고 상경했다. 이해찬 상임고문의 메시지를 받은 문 고문은 직접 한 대표를 만나 임종석 사무총장의 거취를 거론했다. 다음날 임 총장은 사퇴했다.



 유력 대선주자인 문 고문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들이다. 메시지가 무엇인지보다 전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또 전하는 사람의 존재감 자체가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는 게 증명된 케이스이기도 했다. 총선 전만 해도 문 고문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맞상대할 야권 주자로 여겨졌다.



 그랬던 문 고문이 지금은 코너에 몰리는 모습이다. 이해찬 상임고문과 박지원 최고위원이 각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맡는 역할분담 합의에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다. 문 고문 측은 “박 최고위원을 만나 역할분담을 직접 거론한 건 아니며 계파 간 화합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 최고위원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 고문을 만나기 전 문 고문을 만나 대의를 설명 들었다”고 엇갈린 말을 했다.



 이·박 연대가 계파 간 담합을 통해 ‘원내대표-대표-대선주자’의 틀을 결정해 버렸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자연스레 문 고문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도 터져나왔다. 이낙연 의원은 “담합에 대선주자가 개입했다”고 했고, 장세환 의원은 “무조건 두둔하고 나선 문 고문의 가벼운 처신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우윤근 의원은 “문 고문이 당 문제에 깊게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다른 차원에서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해찬·박지원을 비판한 유인태 당선인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원내대표에 출마한 그는 30일 “문 고문과 통화했는데 ‘(이해찬이) 선배님과 통화 안 했습니까’라고 묻더라. 당 활동을 안 해봤으니까 잘 모르고, 다 동의 얻고 제의했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해찬·박지원이라는 두 정치 프로가 아직 아마추어인 문 고문의 순수성을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초·재선 의원과의 만남에 참석한 유 당선인은 또 “(이·박 담합에) 우리가 아껴야 할 자원을 개입시킨 건 대단한 실책이다.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분까지 역할분담에 끌어들인 건 대단히 잘못됐다”고 했다. ‘끌어들였다’는 표현은 주어만 바꾸면 ‘끌려갔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유력 대선주자가 자기 결정권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리더십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는 이유다.



 문 고문의 책 『문재인의 운명』에는 당선이 유력한 종로를 떠나 부산 출마를 결심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모두가 반대했으나 자신의 길을 갔다는 부분에서 책은 ‘큰 정치인이 가진 자기결정권’의 힘을 보여주려 했다. 문 고문은 평소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강조한다. “문 고문을 끌어들인 건 대단한 실책”이라는 지적은 그런 맥락에서 당내의 울림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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