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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으로 살았다, 정선민의 눈물

중앙일보 2012.05.01 00:14 종합 28면 지면보기
정선민이 3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여자프로농구연맹 사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자신의 활약상이 담긴 동영상을 바라보다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그는 “29년 동안 열정을 다해 이 자리까지 왔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연합뉴스]


“(농구)너로 인해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평생 이어갈 소중한 인연도 한둘이 아니다. 너 때문에 정말 행복했다.”

29년 선수 생활 은퇴
“지금이 그만두기 적당한 때”
우승 9회, 득점왕 7회, 첫 미국 진출
“농구 잘하니까 이기적이라 평가”



 당당하던 ‘바스켓 퀸’ 정선민(38)이 29년을 함께한 농구공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훔쳤다. 지름 24㎝의 농구공 속엔 그의 청춘이 녹아 있다. 아직 미혼인 그는 “농구공과 함께하는 순간엔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했다”고 했다. 스물아홉 살이었던 2003년엔 농구공 하나만 들고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로 나아갔다.



 비록 6개월 만에 돌아왔지만 국내 여자선수 최초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시애틀 스톰에 진출했다. 일부에선 “경기에 나가지도 못 하면서 왜 갔느냐”고 혹평했다. 정선민은 “지금 돌아봐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한국 여자농구의 ‘살아 있는 전설’ 정선민이 정든 코트를 떠난다. 그는 30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여자프로농구연맹 사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했다. 이미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터라 마음은 홀가분했다. 정선민은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29년 동안 어느 선수보다 코트에서 열정을 다했다. 그래서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도 마련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선민은 1984년 마산 산호초 4학년 때 교사의 권유로 농구에 입문했다. 시골 학교에서 언니들을 쫓아다니며 어깨너머로 농구를 배웠다. 그는 “중3 때까지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선수였다. 마산여중을 졸업하고 마산여고에 진학하면서 갑자기 농구가 늘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의문”이라고 했다. 고1 때부터 베스트 5로 경기에 나섰다. 첫 출전한 춘계대회에서 평균 28득점을 올리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1993년 실업팀 SK에 입단한 정선민은 프로 출범 이후 꽃을 피웠다. 신세계-KB스타즈-신한은행을 거치며 총 9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개인 타이틀도 화려하다. 최우수선수(MVP)와 득점왕을 7차례씩 차지했다.



 그러나 시련도 많았다. 가는 팀마다 코칭스태프와 의견 충돌이 잦아 ‘이기적인 선수’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신한은행에선 5차례 우승을 했지만 임달식 감독과의 불화로 2011년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도 했다. 친정팀 KB스타즈로 돌아온 정선민은 팀을 6년 만에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시키고 은퇴를 선언했다. 정선민은 “농구를 잘하니까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도 듣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이기적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은퇴를 결심한 건 또 다른 삶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서다. 정선민은 “나이를 먹으며 딜레마에 빠졌다. 코트에서 뛰는 건 좋지만 시즌 후 6개월 동안의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동갑내기 추승균의 은퇴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그렇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마무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다. 지금이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선민은 후배들에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없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미국 진출 때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기회가 되면 해외로 나갈 것을 후배들에게 권유하고 싶다”고 했다. “당분간 쉬면서 향후 계획을 생각하겠다”는 그는 “TV해설위원도 해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오명철 기자





정선민이 걸어온 길



1974년 10월 12일-경남 마산 출생



1984년-마산 산호초 4학년 때 교사의 권유로 농구 입문



1993년-실업팀 SK 입단



1994년-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



<프로 출범 이후>



신세계(1998~2003년),



KB스타즈(2004~2006년),



신한은행(2007~2011년),



KB스타즈(2011~2012년)



2000년-시드니올림픽 4강



2002년-세계선수권 4강



2003년-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진출



정선민이 남긴 기록



- 프로 통산 총 415경기(7위), 8140득점(1위) *2위 김지윤 6905득점



- 2점슛 성공(6401개 시도 중 3007개 성공), 자유투 성공(2240개 시도 중 1952개 성공), 자유투 성공률(87.14%) 1위



- 정규리그 최우수선수 7회, 득점왕 7회, 우승 9회(신세계 4회, 신한은행 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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