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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자동차 왕국의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2012.05.01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베이징(北京)의 웬만한 2차선 도로엔 철제 분리대가 설치돼 있다. 불법 유턴이나 무단횡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며칠 전 퇴근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띄엄띄엄 놓인 가로등 때문에 시야가 밝지 않았는데 앞에서 시커먼 물체가 다가왔다. 속도를 줄이고 조향등을 있는 대로 다 켜서 보니까 역주행해 오는 차량이었다. 헤드라이트도 꺼져 있었다. 크게 돌아가자니 멀어 손쉽게 역주행을 택한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중국에선 정말 다반사에 속한다.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왕징(望京) 지역의 길은 보통 차도 4차로에 자전거 전용길까지 모두 6차로다. 이런 넓은 길을 건널 때 다른 데 신경을 팔다간 아찔한 교통사고를 당할 수 있다. 녹색 신호등이 켜져 길을 건너기 시작해도 행인들의 앞뒤로 공간만 생기면 차들이 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정면과 오른쪽만 보고 건너다간 불법 유턴과 역주행을 하는 차량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이런 활극이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 적응하고 산다는 게 신기한 일이다. 우스개로 ‘얼마 전까지 자전거 타던 사람들이 핸들을 잡고는 자전거 타듯이 차를 몬다’는 말이 실감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운전자들이 몰려나오니 순환도로가 5개씩이나 되는 베이징이지만 도로마다 이리저리 차들로 엉키게 된다.



 중국에선 지난 10년간 자동차 혁명이 일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수입관세가 없어졌고, 내수 촉진책으로 각종 세제 혜택이 뒤따랐다. 지난 3년간 해마다 약 1800만 대에 달하는 신차가 시장에 풀렸다. 등록 차량만 1억 대에 달한다. 이 속도라면 5년 뒤 2억 대를 돌파한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의 최전선이 됐다. 요즘 열리고 있는 베이징 모터쇼에는 1250종의 차량이 전시됐고 신차만 120종의 모델이 몰렸다. 자동차 시장 개방 10년 만에 이룬 대단한 성과다. ‘차이나 속도’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질서와 안전의식 같은 소프트웨어의 뒷받침 없는 이런 초고속 양적 팽창이 사회 발전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0년간 교통사고 사망건수는 90만 건에 이르고 교통지옥이 일상화되면서 도시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은 ‘사람 사이의 안전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짜증 지수가 높다 보니 폭력 사고가 빈발한다. 러시아워가 아닌데도 베이징에선 택시 잡기가 힘들다. 길바닥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 돈이 안 된다며 기사들이 택시 핸들을 놓기 때문이란다. 대중교통 확충 속도를 훨씬 뛰어넘어 자동차를 쏟아내면서 일어난 일들이다. 운전자의 안전의식과 질서 있는 교통문화가 자리 잡기도 전에 차량 대수만 늘려놓은 성장 정책의 부메랑이기도 하다. 양적 팽창이 한계점에 달했다. 이제 중국 당국은 질적 성장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교통만 놓고 봐도 현실에선 이렇게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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