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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최시중과 곽노현

중앙일보 2012.05.01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며칠 전 비바람에 봄꽃이 졌다. 속절없이 떨어져 누운 저 봄꽃의 조락은 매양 겪는 일이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건만, 왠지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 것은 권력실세들의 구속수감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것도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정치인들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목구멍의 가시처럼 신경을 긁어대는 건 그들이 다름 아닌 언론과 교육계 출신이라는 점이다. 언론계의 원로, 교육수장이라 해서 세속적 유혹에 대한 남다른 면역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타락정치의 마지막 문을 지킬 비판력의 재생은 결국 교육과 언론의 몫이라고 생각했던 터이다. 그런데 그 무의식적 기대의 마지노선이 무너진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사회를 이 정도로 발전시킨 원동력은 교육과 언론이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이끈 쌍두마차가 교육과 언론이라는 사실은 한국의 유별난 자부심이기도 하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던 한말 개화기 지도자들이 제일 먼저 꺼내든 처방전이 교육과 언론이었다. 세계를 두루 돌아본 청년지식인 유길준은 『서유견문』을 집필하면서 ‘방국의 권리’를 서두에, ‘인민의 교육’을 다음 장에 배치했다. 열강의 침탈 속에서 자주독립의 길을 고뇌하던 고종은 1895년 교육조서를 공표했다. “백성들은 들으라, 세상의 형세를 깨달아 부강 독립 웅시하려면 우선 배우고 지식을 개명하라. 그것은 교육이니 헛된 이름과 실제 소용을 먼저 분별하라”고. 덕양(德養), 체양(體養), 지양(智養)이 교육의 요체였다.



 관립·공립학교는 물론 지방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 사립학교를 세웠다. 전국에 6000여 개의 학교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놀라운 것은 야학운동이다. 가난해서 혹은 생업 때문에 수학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위해 식자들이 야학을 운영했다. 물장수야학, 지게꾼야학 같은 것은 세계사적으로 희귀한 현상일 만큼 한국인의 교육 열기는 유별났다. 문명개화의 꿈, 부국의 꿈을 일구기 위한 한국인들의 몸부림, 그 선두에 교육이 있었다.



 미몽의 인민을 깨우고 교육 열기를 전파한 것은 언론이었다. 최초의 신문인 독립신문은 일제의 감시가 번득이던 간난의 시기에 발행됐다. 독립신문이 폐간되자 남궁억이 황성신문을 창간했고,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에 뛰어들었다. 장지연, 박은식이 매일 격론을 토했다. 신문 읽어 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의 무리가 장터를 메웠다. 원시적인 팟캐스팅이었다. 절망적인 식민상황에서도 희망의 등불을 켰던 것은 언론이었고, 1970년대 무소불위의 독재에 항거했던 것도 언론이었다.



 정말 역사가 그러한데 최시중과 곽노현, 언론계 원로와 교육계 수장이 그런 역사를 뭉개고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정치는 사람에 빚지고 돈에 빚진다’는 최시중 전 위원장의 고백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붓 하나로 역사를 지켜온 언론인이 할 말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언론인들이 필화사건으로 고난의 길을 걸었는가. 2억원 제공이 ‘선의(善意)’라고 거듭 주장하는 곽노현 교육감, ‘자신이 만든 하느님’ 품에 망명해서 자신을 ‘천사’로 착각하는 그 비뚤어진 확신은 피로에 지친 물장수들을 깨워가며 열강하던 청년교사들의 비장한 언어가 백여 년 진화한 결과인가? 떨어져 누운 꽃잎을 보며 묻고 싶은 게 그것이다. 지천으로 밟히는 꽃잎들이 마치 한국의 교양시민, 담합사회의 야합행동을 걸러줄 도덕적 여과장치를 항시적으로 가동해야 할 그들이 기실은 이토록 허약하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듯해 서글퍼 하는 말이다.



 교양시민은 학식이 높고 직업윤리가 남다른 전문가집단으로 사회지도자를 배출하는 핵심 중산층이다.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사회정의(책임의식, 시민정신, 공공선)로 무장한 층을 지칭한다. 돈보다 전문가적 자존심, 현실적 이득보다 정신적 고양이 더 중요하다. 자기 검열을 위해 정신의 창고를 채우는 사람들, 원칙을 거스르면 스스로 유배형을 내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정치를 맡기는 이유는 사리사욕과 현실적 유혹을 물리칠 단호한 결기를 길렀으리라는 대중적 기대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노동계급과 농민층에 정치적 주도권을 양도하라. 그들은 적어도 남의 몫을 탐하지 않으며 자신의 노동이 남의 허기를 메워준다는 사실쯤은 터득하고 있다.



 한말 유학자 매천(梅泉) 황현은 고향 구례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시국동향을 매일 관찰했다. 매의 발톱 같은 촉각으로 재구성한 시대 기록 속에 비수 같은 평문을 찔러 넣었다. 대중교육이 없던 시대에 엄정한 교육자였고, 신문 없던 시대에 꼿꼿한 언론인이었다. 일제가 강제합병을 단행하자 그에겐 절명밖에 길이 없었다.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을 생각하니, 글 배운 사람 구실 이토록 어렵구나.” ‘배운 사람’-이 시대 교양시민의 구실을 제대로 못해 대중의 피로와 실망을 가중시킬 사람이 더 있다면 차라리 조용히 사라져 달라.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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