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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빵은 맛있다 그리고 아름답다

중앙일보 2012.04.24 03:50 1면
권혁진씨는 “몸에 해로운 재료를 쓰지 않고 정성 들여 만든 빵은 맛도 모양도 다르다. 정직한 빵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몽상가인’은 천안시 신방동에 있는 빵집이다. 이 집 주인장 권혁진(38)씨는 최근 국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지난해 장애인기능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딴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장애인기능올림픽은 해마다 국내 대회 우승자를 가린 뒤 우승자들끼리 경합을 벌여 최고의 실력을 갖춘 1명에게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동탑산업훈장 수상 제과점 ‘몽상가인’ 권혁진 대표

장찬우 기자 , 사진=조영회 기자





권씨는 케이크로 금메달을 따냈다. 멸종위기에 놓인 물개가 사람과 함께 놀며 즐거워하는 모양을 초콜릿으로 형상화했다. ‘자연’이라는 주어진 주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권씨는 13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 사고를 당해 오른쪽 팔이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는 각 나라를 대표해 출전한 다른 선수들을 누르고 당당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고인 물은 썩는다



몽상가인은 소문난 빵집이다. 찾는 손님이 많아 직원이 9명이나 된다. 권씨는 편하게 장사해도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제과제빵 분야에서 규모와 명성이 알려진 큰 대회를 해마다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 한번 출전하면 최소 몇 개월은 밤낮을 잊고 작품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설탕공예의 경우 대회에 나가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만 꼬박 7~9시간이 걸린다.



 이미 소문난 빵집이고 지금까지 출전한 대회 수상경력만으로 모자람이 없는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대회를 준비하고 도전하는 이유가 뭘까. 남들은 그가 각종 대회에 출전하는 이유를 ‘상’ 때문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수상경력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대회에 나가 상을 타면 좋은 일이지만 수상경력 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는 배움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는 “고인 물이 썩 듯이 사람도 편안한 삶에 안주하면 발전이 없다”고 말했다.



빵은 정성들인 만큼 나온다



권씨는 밀가루 반죽을 빨리 많이 부풀게 하기 위해 넣는 개량제(산화제)나 방부제 역할을 하는 유화제를 넣지 않고 빵을 만든다. 몸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28살 때 처음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넣지 말아야 하는 것, 쓰지 말아야 하는 재료를 넣으면서까지 빵을 만들지는 말자’는 다짐을 했다. 권씨는 지금도 하루 반나절 자연 발효시킨 반죽으로만 빵을 만든다. 남들은 반나절이면 해치울 일을 그는 18시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 자연 발효된 반죽으로 모양을 내고 오븐에 구워낸다.



 이 때문에 남들보다 늦게 퇴근하고 일찍 출근해야 하지만 그는 하루도 이 원칙을 깨지 않고 빵을 만들어왔다. 권씨는 “빵은 정직하다. 정성들인 만큼, 신경 쓴 만큼 모양도 맛도 다르다.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장사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배우지 말고 터득하라



권씨는 최근 직원 1명을 내보냈다. ‘자세’가 안 돼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직원을 내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나를 잊지 마라” 다른 곳에 가면 오기로 라도 열심히 배우고 익혀 자신을 딛고 다시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쫓겨나는 사람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로 작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을 배우러 온 직원들에게 “영혼이 없는 기술은 배우지 말라”고 말한다. 기본을 익히지 않고서는 누군가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터득하라”고 말한다. 그가 직원들의 ‘자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자세’를 본다. 그가 생각하는 ‘자세’는 생각의 유연성과 같고 인성과도 같다. 인성을 갖춘 사람이라야 창의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도전은 계속 된다



권씨는 내년에 월드페스트리컵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하면 프랑스 리옹에서 열리는 본선무대에 오른다. 이에 앞서 다음 달에 열리는 세계음식조리대회에 직원을 보내기로 했다.



 ‘몽상가인’은 ‘몽상가’(夢想家)에 도장 ‘인’(印)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권씨는 “몽상가는 헛된 꿈을 꾸는 사람을 말하지만 나는 빵 만드는 일도 창의적인 꿈을 계속 펼치면 언젠가 예술적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빵 예술가가 되려는 ‘몽상’을 굳히고자 상호 끝에 도장 ‘인’자를 붙였다.



 장애를 이기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 몸에 해로운 첨가물을 넣지 않겠다며 반죽이 자연 발효될 때까지 18시간을 기다렸다 빵을 만드는 사람, 끝없는 도전을 즐기는 사람, 그가 ‘몽상가인’ 권혁진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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