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진핑의 ‘킹 메이커’ 쩡칭훙, 중국 최고권력 충돌 막았다

중앙일보 2012.04.24 02:35 종합 2면 지면보기
중국 정계의 꾀주머니 쩡칭훙(曾慶紅·73) 전 국가부주석이 움직였다. 공산 혁명 원로의 자제와 친인척 집단을 지칭하는 태자당(太子黨)의 맏형으로 불려온 그다. 보시라이(薄熙來·63·태자당) 전 충칭시 당서기 실각 이후 조성된 정국 혼란을 막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보시라이 둘러싼 권력투쟁 중재

 2007년 10월 열린 17차 당 대회에서 그는 국가부주석을 끝으로 정계에서 용퇴했다. 대신 자신의 막강한 영향력을 활용해 ‘킹 메이커’로 뛰었다. 같은 태자당이자 오랜 친분이 있는 시진핑(習近平·59)을 국가부주석으로 천거해 후진타오(胡錦濤·70) 국가주석의 뒤를 잇도록 차기 권력 구도를 짰다. 이후 쩡은 현실 정치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존경받는 원로로 자리매김해왔다. 이런 그가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공안국장의 미국 영사관 망명 기도(2월 6일)와 그에 따른 보시라이의 충칭시 당서기 해임(3월 15일)으로 정국 혼란과 계파 갈등이 노출되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시라이
 미국에 서버를 둔 보쉰왕(博訊網)에 따르면 쩡이 막후에서 움직인 것은 이달 초순. 1970년대 내정부장(장관)을 역임한 부친 쩡산(曾山) 타계 40주년 추모 행사를 4월 초 베이징에서 열면서 이 행사를 계기로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줄곧 상하이(上海)에 머물러온 장쩌민(江澤民·86) 전 국가주석을 쩡이 베이징으로 초대한 것. 거동이 불편한 장은 쩡의 제안을 뿌리치지 않았다. 장의 숙부인 장상칭(江上靑)이 쩡의 부친 쩡산과 항일투쟁 당시 상하이에서 지하활동을 함께했던 인연이 있다. 장은 오랜 측근에다 집안끼리 인연이 있는 쩡의 초대에 응하는 형식으로 베이징 무대에 등장했다.



 쩡은 이 과정에서 장의 영향력을 지렛대로 자신의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쩡과 교감한 장은 베이징에서 군부 지도부를 만나 정치권을 향해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한다. 첫째, 보시라이는 당 기율 위반과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영국인 사업가 살인 혐의로 처벌이 불가피하다. 둘째, 보시라이 비호 의혹을 받아온 저우융캉(周永康·70) 정법위 서기(정치국 상무위원)는 (보시라이 사건 와중에) 일부 실수가 있었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잘해왔기 때문에 경위조사는 하되 처벌하지 않는다. 셋째, 차기 권력 구도를 확정할 18차 당대회는 올가을 예정대로 치르고 당초 합의대로 후진타오는 시진핑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후 주석 측에도 전달된 이런 메시지가 약발이 먹힌 정황 증거는 관영 신화통신의 10일 보도 이후 전개된 양상을 통해 상당 부분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보시라이는 10일 정치국원 직무가 정지됐고 조사를 받고 있다. 저우융캉은 12일 정법위 행사에 출석해 후 주석에게 충성을 재확인하는 발언을 한 뒤 18~20일 후베이(湖北)성을 시찰했다. 건재를 과시한 셈이다.



 당 대회 연기 소문을 일축하듯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정상적인 해외순방도 잇따랐다. 원자바오(溫家寶·70·서열 3위) 총리는 20일부터 베이징을 비우고 아이슬란드·스웨덴·폴란드·독일을 순방 중이다. 자칭린(賈慶林·72·4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25일까지 뉴질랜드·브루나이·태국을 순방하기 위해 13일 베이징을 떠났다. 리창춘(李長春·68·5위) 선전 및 이념담당 정치국 상무위원도 15일부터 영국·캐나다·콜롬비아·인도네시아 등 4개국을 순방 중이다. 5년마다 한 번 열리는 중요한 당 대회가 연기될 정도로 권력투쟁이 여전히 심각하다면 상무위원들의 장기 해외순방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중국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도마뱀 꼬리 자르듯 보시라이 숙청을 발표한 4월 10일을 전환점으로 중국 정치권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쩡칭훙의 막후 조정자 역할이 그만큼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장세정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