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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아픈 청춘들 극우 르펜에 열광

중앙일보 2012.04.24 01:56 종합 14면 지면보기
올해는 전 세계적인 ‘선거의 해’다. 세계 193개국 가운데 59개국에서 직·간접 선거가 치러진다. 세계 인구의 53%가 투표장으로 향한다. 각 나라의 선거에서 공통적으로 떠오른 변수는 ‘분노세대’다. 경제위기로 인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금융권과 기득권층에 대한 불만이 생겼다. 본지 취재팀은 프랑스와 미국·독일 등을 찾아 분노세대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세계의 선거 현장을 가다] 프랑스 대선



프랑스 남부 도시 툴루즈(Toulouse). 붉은 벽돌의 도시로 알려진 이곳 외곽의 평화로운 시골 마을 로즈래(Roserai)에서 지난달 네 발의 총성이 울렸다. 아랍계 청년 모하메드 메라(23)가 유대인 학교에 총을 난사해 유대인 어린이 세 명과 어른 한 명이 숨졌다.



 지난 16일 찾은 유대인 학교에는 담장을 따라 잎이 마른 조화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주민들은 아직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로렌조 프로페리(25)는 “마을에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치안이 불안해졌다”며 “일자리를 얻지 못한 외국인들이 불법 무기거래로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이 마을에 살았다는 나탈리 후니즈(47)도 “범인 메라는 알제리 이민 가족 출신”이라며 “어려서부터 사회에 불만을 갖고 자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 대통령 후보인 마린 르펜이 22일 파리에서 주먹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그는 이날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17.9%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 국민전선 창당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이다. [파리 로이터=뉴시스]
 22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모두를 놀라게 한 결과는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마린 르펜(44) 후보가 17.9%의 득표율을 보인 것이다. 극우 정당 창립 이후 최대 득표율이다. 경제위기로 불거진 중산층과 서민의 불만이 좌파 정당 지지라는 계급적 투표보다 민족주의를 내세운 극우 정당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국민전선 창립자 장마리 르펜의 딸인 마린 르펜은 이번 대선에서 민족주의를 앞세우면서도 보호무역으로 프랑스 경제를 살리자고 주장해 상당수 중도층 표를 끌어안았다는 분석이다. 19일 파리의 오페라역 광장에서 만난 파비아(26)는 “우리가 내는 세금을 외국인한테까지 줄 필요는 없지 않으냐”며 “‘68세대(1968년 5월 드골 정부의 실정과 사회적 모순으로 시작된 저항운동 및 총파업투쟁을 주도한 세대)’ 때부터 지금까지 프랑스는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극우 정당 지지층 가운데서도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젊은 층의 지지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CSA가 이달 초 공개한 결과를 보면 18~24세 그룹의 국민전선 지지율이 26%로 다른 정당들을 제치고 1위였다.



 해외 언론들 역시 결선에 오른 사회당 올랑드 후보나 사르코지 현 대통령보다 르펜에게 더 관심이 많다. 뉴욕타임스는 “극우 세력에 표가 몰린 것은 프랑스 경제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anger)가 나타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프랑스 대선의 극우 정당 강세현상을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데도 과도한 복지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라고 설명한다.



 프랑스의 실업률은 10%에 달해 지난 13년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는 90%에 육박한다. 반면에 GDP 대비 조세 부담률은 40%가 넘는다. 고려대 조재룡(불문학) 교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과도한 복지정책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미국식 자본주의에서 해답을 찾는 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숭실대 조홍식(정치외교학)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 프랑스에서 젊은 층이 극우파에 몰린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라며 “지속된 사회불안이 외국인에 대한 분노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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