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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원 빌려주면…" 전직 사채업자의 고백

중앙일보 2012.04.24 00:44 경제 1면 지면보기


한은호(58·가명)씨는 지난해 10월 ‘사채업’을 접었다. 2009년 10월 서울 변두리에서 ○○캐피탈이라는 상호로 대부업 등록을 한 지 꼭 2년 만이다. 이름은 대부업이지만 사실은 사채업에 가까웠다. “그런 ‘정글’은 처음 봤습니다. 다시는 근처에도 안 갈 겁니다.”

“사채 피해신고 받는 정부 한심 평소 단속했다면 피해 있겠나”



 23일 한씨가 전해준 사채 시장의 풍경은 법도 감시도 없는 정글, 그 자체였다. 업자들은 보통 1000만원을 빌려주면 100일 동안 매일 12만원을 받았다. 연리로 따지면 무려 141.99%. 법정 최고이자율(39%)보다 100%포인트 이상 높은 금리다. 업자들마다 정해놓은 것처럼 비슷한 금리를 받았다. 그는 “많이 받는 이들은 선취 수수료를 50만원 더 떼고, 적게 받는 이들은 매일 11만5000원을 받았다. 그나마 그 업자는 하루 5000원 깎아줬다고 업자들 사이에서 왕따가 됐다”고 했다. 한씨는 이런 세계를 견뎌내지 못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어떻게 사채업을 시작했나.



 “고향 동생이 권유했다. 사채업 10년에 집을 세 채 샀다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종잣돈 10억원을 마련했다. 그런데 돈 버는 법이 달랐다. 정상적인 영업이 아니었다. 탈법이었다.”



 -어떻게 탈법이 가능했나.



 “지방자치단체가 대부업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데 손을 놨다. 2년 영업하는 동안 한 번도 불법 광고나 고금리 단속을 나오는 공무원을 본 적이 없다. 업자마다 대출 계약서를 저장해 놓은 USB메모리를 들고 다닌다. 그걸 압수해 채무자를 찾아가 ‘얼마씩 내느냐’고 물어만 봐도 이런 탈·불법 실상을 금세 알 수 있다.”



 -합법 영업하는 사람은 없나.



 “불법 영업을 해도 걸릴 리가 없는데 왜 자진해서 금리를 낮게 받겠느냐. 이자를 연 100% 밑으로 받는 사채업자는 TV광고를 하는 대형 업체들 정도일 것이다.”(※ 기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23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행정안전부 지역경제과에 전화해 지자체의 대부업 단속 실적을 요청했다. 세 기관 모두 “각 시·군이 알아서 단속하기 때문에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자체는 사실상 대부업 등록 민원만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고도 귀띔했다.)



 탈법 다음엔 탈세가 있었다. 사채업자들은 허위증빙 자료를 세무사에게 제출해 월 5만원에 회계 장부를 조작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장부 조작이 심한가.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벌면서 연소득을 1400만~1800만원 정도라고 신고한다. 1년에 카드를 1억원 쓰는데도 국세청 조사 받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5억원만 굴려도 한 달에 5000만원 넘게 벌어들인다.”



 -2년간 얼마나 벌었나.



 “내 인건비는커녕 원금에서 4000만원을 손해 봤다. 법정 최고이자율을 꼬박꼬박 지키고, 직원들 4대 보험을 가입해 주는 등의 ‘준법 경영’을 한 결과다.”



 한씨는 “차라리 대부업 이자를 높이고 불법을 제대로 단속하는 게 서민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가 처음 대부업을 시작할 때 법정 최고이자율은 연 49%였다. 지금은 연 39%까지 떨어졌다. 법정 이자를 지키려면 돈을 잘 갚을 사람인지, 담보는 있는지를 따져 빌려줄 수밖에 없다. 그의 심사에서 탈락한 이들은 100%대 이자를 내어가며 돈을 빌렸다.



 -이자율을 낮추는 게 의미가 없다는 얘긴가.



 “그렇다. 최고 이자율이 얼마가 되건 실제 받는 이자는 100% 이상이다. 신용 낮은 이들에겐 연 50~60%의 금리라도 제대로 지키게만 해줘도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사업을 접었다. 굳이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 이유가 뭔가.



 “금융 당국이 최근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를 받는 걸 보며 기가 찼다. 평소 제대로 단속만 했어도 그런 피해가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병 주고 약 주는 꼴이 하도 한심했기 때문이다.”





대부업 최고이자율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대부업자와 모든 금융회사에 적용되는 최고이자율. 정부는 대부업체 고금리로 인한 서민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법정 최고이자율을 2010년 4월 연 49%에서 44%로, 2011년 6월 다시 연 39%로 인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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