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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성의 홍콩뷰] ‘산자이’의 진화 … 중국 짝퉁 기업들 다시보자

중앙일보 2012.04.24 00:31 경제 9면 지면보기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면 남자 주인공이 ‘GUESS’를 ‘GEUSS’로 잘못 표기한 짝퉁 옷을 입고 나오는 장면이 있다. 짝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선배가 지적하기 전까지 주인공은 짝퉁인지 아닌지 신경도 쓰지 않고 입고 다닌다. 우리에게도 짝퉁 티셔츠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중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진짜 같은 가짜가 너무 많다. 가짜 명품시계, 가짜 아이폰을 넘어 가짜 오리알, 짝퉁 소녀시대 등까지…. 모방의 범위는 상상 그 이상이다.



 짝퉁과 관련해 중국에는 ‘산자이(山寨)’라는 신종어가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산적 소굴’이라는 뜻이다. 중국 남부 지역에서 제조된 유명 브랜드 복제폰이 ‘산자이 핸드폰’으로 불리면서 최근에는 광범위하게 짝퉁문화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산자이는 유명 브랜드 상품을 그대로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진품보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제품을 내놓는다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면 아이폰 복제폰이지만 카메라 해상도를 높이거나 중국어 사용이 편하게 하는 식이다.



 산자이는 중국 기업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리(吉利)자동차는 로컬 브랜드 완성차업체 중에서 2~3위 정도 하는 메이저급 회사지만 산자이 문화에서 예외가 아니다. 3년 전 상하이 모터쇼에 출시했던 GE 모델은 롤스로이스 팬텀과 거의 비슷한 디자인으로 화제가 됐다.



 또 유사 제품을 만들다가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경우도 있다. 사니(三一)는 굴착기 등 건설중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다. 예전에는 일본을 흉내낸 제품을 만들었고, 제품의 질도 한국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 제품보다 비싸게 팔리는 등 앞서가고 있다.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발생했을 때 62m 펌프가 부착된 콘크리트펌프트럭을 무상 공급해 원전에 물을 주입하는 데 도움을 줬다. 전 세계적으로 사니만큼 긴 펌프가 있는 트럭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으로서는 자존심이 많이 상하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주식시장은 이들 기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투자가들은 아주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지리자동차 주가는 2008년 10월 말 저점을 찍고 13배 넘게 올랐다. 사니는 6배 오른 상태다. 투자가 사이에서는 복제품을 만드는 기술이 짝퉁 기술이 아닌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이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포장된다. 모방은 창조를 위한 과정이 될 수 있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품 자체는 똑같이 만들 수 있어도 보이지 않는 기술력은 모방이 안 된다. 지적재산권 침해도 문제다. 자국 내에서는 괜찮을지 몰라도 글로벌 플레이어로 발돋움하기에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 산자이 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기술력 문제를 해외 인수합병(M&A)을 통해 해결을 꾀하고 있다. 지리자동차는 2009년 호주 변속기업체 DSI를, 2010년엔 스웨덴의 고급 승용차 회사인 볼보를 인수했다. 사니는 독일 레미콘 제조업체인 푸츠마이스터를 인수해 세계적인 기술력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해외 유명 브랜드 인수는 중국 기업이 글로벌 회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크게 단축할 것이다. 현대차가 엑센트를 처음 미국에 수출한 것이 1986년인데, 26년이 걸려 지금의 위상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현대차의 시가총액은 800배 넘게 커졌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중국 자동차 업체는 현대차가 걸린 시간의 절반도 안 돼 경쟁 대상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고, 주가도 현대차 못지않게 오를 수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중국 기업이 해외 기업 M&A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중국에서도 미래의 삼성전자·현대차가 나올 것이다. 세계 업체로 변신 중인 중국 기업에 중장기 투자 대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유재성 삼성자산운용 홍콩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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