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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휘발유 값, 누진 가격제로 잡자

중앙일보 2012.04.24 00:52 종합 33면 지면보기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휘발유 가격이 연일 고공행진이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향후 원유가격이 배럴당 120달러에서 최악의 경우 200달러를 넘어 2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연구기관도 많다. 이처럼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정부도 대책 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며칠 전엔 삼성토탈을 제5 정유사업자로 선정해 정유사 간 경쟁 강화를 통해 휘발유 값 인하에 나섰다.



 그러나 방향은 옳지만 휘발유 가격 중 유통 비용과 마진이 차지하는 비중이 6%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또 일각에선 2008년 당시 시행했던 유류세 인하, 유가환급금 지급, 유가보조금 지급 등을 시행하라고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마뜩지 않다. 유류세 인하는 효과가 미약할 뿐만 아니라 부자에게 혜택이 더 돌아가는 소득분배의 역진성이 문제다. 유가환급금과 유가보조금 지급은 지급 대상의 오·식별과 행정비용이 문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근본적으로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건 휘발유 가격은 너무 높아도 문제고 너무 낮아도 문제라는 점이다. 휘발유 가격이 너무 비싸면 서민 가계에 어려움을 주고, 너무 낮으면 에너지 절약과 탈화석연료 정책으로 대표되는 녹색성장 목표와 모순된다. 이런 점에서 서민가계 부담 완화라는 한쪽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정부의 대책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까지는 없다. 휘발유 소비를 자세히 뜯어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휘발유 소비는 생필품과 사치품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출퇴근용 소형 승용차 연료로서의 휘발유와 레저용 대형 승용차 연료로서의 휘발유는 분명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같은 휘발유 소비의 양면성을 무시한 일률적인 휘발유 값 인상 억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에너지, 환경 정책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바로 여기에 서민가계 부담 완화와 녹색성장이라는 일견 모순된 목표를 조화시킬 해법이 있다. 즉 서민가계 부담 완화를 위한 가격정책은 생필품적 휘발유 소비를 대상으로 삼아야 하고,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 절약은 사치품적 휘발유 소비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생필품적 휘발유 소비는 당연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전기 가격과 같이 생필품 성격이 있는 기본 소비량까지는 저렴한 기본가격을 적용하자. 반면에 사치품적 성격이 있는 과소비량 부분에 대해서는 할증가격을 적용하는 가격 누진제가 해답이 될 수 있다.



 가격 누진제는 누적 소비량 계측이 가능해야 한다. 이는 차량별 주유카드 발급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주유카드를 매개로 차량별 누적 소비량을 계측하는 것은 세계 최고의 통신망을 갖춘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차량별 누진가격제는 기본가격의 대폭 인하와 누진율 상향 조정을 통해 경차를 이용하는 서민들에게는 실질적 가격 인하 효과를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형 승용차를 모는 짝퉁 서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오류도 방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소형 승용차 선호도를 높여 에너지 절약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시 말해 차량별 누진가격제는 생필품적 휘발유 소비 비중이 높은 서민가계는 보호하면서, 사치품적 휘발유 소비는 억제해 에너지 절약에 기여하는 양수겸장 가격정책이 될 수 있다.



 에너지 가격 인하만이 능사가 아니다.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에너지 절약형 경제시스템은 생필품적 에너지 소비는 에너지 복지 차원에서 보호돼야 하지만, 낭비적인 사치품적 에너지 소비는 고에너지 가격 신호에 의해 억제되는 시스템이 돼야 할 것이다. 고에너지 가격 정책을 유지한 일본이 세계 최고의 에너지 절약 기술국이 된 점은 시사하는 바 크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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