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붓이 다시 춤춘다, 70대 화가의 귀향

중앙일보 2012.04.23 01:12 종합 26면 지면보기
한국화단의 원로인 남천 송수남 화백이 화사한 봄꽃그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남천은 1956년 고교 3학년 때 전주에서 첫 전시회를 열고 서울로 떠난 지 5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최근 몇년간 그려온 꽃을 접고 다시 수묵화의 세계로 돌아가겠다”며 “내 예술 인생에 은퇴란 없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니/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메마른 입술은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브라보 마이 라이프] 55년 만에 전주로 온 송수남씨



 20일 전북 전주시 서서학동 흑석골에서 만난 남천 송수남(74)화백은 정지용 시인의 ‘고향’을 읊조렸다. 남천은 “‘인생을 헤매는 중’이라는 생각을 다 떨치진 못했지만, 이제는 머나 먼 항해를 마치고 고향에 닻을 내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마당에선 연분홍 벚꽃이 날리고, 새빨간 복사꽃은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한국화단의 원로인 남천은 지난해 이곳으로 들어왔다. 고교 3학년 때 전주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서울로 떠난지 55년 만의 귀향이었다.



 “할머니를 따라 이 근처의 절에 다니곤 했어요. 저쪽에 작은 폭포가 있어 여름이면 친구들과 멱 감으러 다니곤 했지요.”



 그는 전주시내 교동에서 태어나 중앙초등학교(1회)를 다녔다. 어린 시절 뛰놀던 경기전과 한벽루·전주천의 추억은 그림의 바탕이 되었다. 홍익대 동양화과에서 30여 년간 교수를 하며 30여 차례의 개인전과 상파울루비엔날레 등 주요 단체전에 100여회 참가했다. 영국 대영박물관과 스웨덴 국립동양박물관, 뉴욕 브루클린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 서울살이는 번거로웠어요. 각종 모임 쫓아 다니고 전시회 찾아 다니는 일에 묶여 작업할 시간이 모자랐죠. 고향에 돌아와 마음이 편하니 창작의욕이 샘솟아 오릅니다.”



 남천의 예술세계는 고단한 실험과 도전으로 점철돼 있다. 1960~70년 실경 산수가 유행할 때 관념적이고 조형적인 산수를 추구했고, 80년대부터는 ‘현대수묵운동’을 주도했다. 90년대에는 ‘붓의 놀림’ 시리즈로 수묵의 원초적 조형미를 표현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꽃·나무를 살피고, 오전 8~9시부터 캔버스 앞에 앉아 오후 6시까지 작업에 열중한다.



남천은 “‘문화예술의 도시’ 전주에 미술관·전시관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고 했다. 이를 위해 분신처럼 아껴온 수천점의 그림과 붓·화구·책 등의 자료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예술 에 은퇴란 없어요. 붓을 잡을 힘만 있다면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영원한 현역이라 할 수 있어요.” 그의 목소리가 가슴에 메아리쳤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