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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의 3대 승부수, 사선대형·쐐기대형·예비대

중앙선데이 2012.04.21 23:54 267호 11면 지면보기
알렉산더와 다리우스는 가우가멜라 전투에 앞서 이수스에서 전쟁을 벌인다. 이수스 전투의 장면을 묘사한 모자이크 벽화의 왼쪽 말을 탄 사람이 알렉산더, 오른쪽 수레에 탄 사람이 다리우스다. 이 벽화는 베수비오화산의 폭발로 잿더미에 파묻혔던 폼페이의 한 주택에서 발견됐다. 이어 벌어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알렉산더는 대승을 거뒀다. [사진 이탈리아 국립 고고학박물관]
가우가멜라 전투는 기원전 331년 10월 1일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벌인 싸움이다. 이 전투로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했다. 다리우스는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침입을 막으려고 지금의 이라크에 있는 모술 근처 가우가멜라 평원에 진을 쳤다. 페르시아군의 진영은 전차 200대, 경보병 6만2000명, 중장보병 2000명, 기병 1만2000명, 전투 코끼리 15마리 등으로 총 9만~10만 명 정도의 병력이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다리우스는 전차의 원활한 기동을 위해 평원의 잡목과 풀들을 모두 베어버리라고 명령을 내렸다.

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 <23> 승리는 만들 수 있다

이에 맞서 마케도니아 측은 경보병 9000명, 중장보병 3만1000명, 기병 7000명으로 수적으론 훨씬 열세였으나 장비와 훈련 정도는 페르시아를 압도했으리라고 본다. 이때 알렉산더는 특이한 대형을 만들었는데 바로 옆으로 기울어진 사선대형(oblique order)이었다. 알렉산더의 창의적 발상이었다. 대형을 45도 비스듬이 기울임으로써 페르시아군의 기병을 최대한 좌우 날개 쪽으로 끌어들여서 적진의 틈을 만든 뒤 결정적인 일격을 가해 다리우스 본진으로 치고 들어가겠다는 대담한 작전이다. 이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타이밍과 기동력이 필요했다. 알렉산더 자신도 제일 먼저 앞에서 움직여야 했다. 도박에 가까운 계획이 아닐 수 없었다.

야습 건의에 승리를 도둑질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페르시아군은 3.6 ㎞의 긴 전열로 알렉산더군을 포위한다는 평범하고 단순한 계획을 세웠다. 시작부터 이렇게 차이가 났다. 가우가멜라에 도착한 양측은 최초 3~4일간 탐색전을 벌였다. 전투 전날 밤, 페르시아군은 야간기습을 우려해 진지에서 밤새 무장한 채로 서 있었으나 알렉산더군은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이 점에서도 이미 알렉산더는 다리우스를 이기고 있었다. 적이 지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측근들이 서둘러 알렉산더에게 야습을 건의했다. 이때 그는 “승리를 도둑질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한다. 자신감의 발로(發露)다. 꼼수를 사용해 이기지 않겠다는 배포다.

알렉산더는 적을 끌어들이기 위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사선대형으로 다가오는 알렉산더군을 맞아 다리우스는 전차를 돌격시키며 전투를 벌였다. 알렉산더군은 이미 전차에 대비한 상태여서 맹렬하게 밀려오는 상대 전차에 맞서 제1열이 비스듬이 물러나 틈을 열고 제2열이 전차를 에워싸는 전술을 구사했다. 결국 전차는 알렉산더 창병에 의해 포위되었고 전차에 탄 수많은 기수가 찔려 죽었다.

페르시아군은 압도적인 수를 이용해 마케도니아군의 우측 날개 쪽으로 밀고 내려왔고 알렉산더는 천천히 제2선으로 밀렸다. 그러면서 그는 막강한 밀집대형의 컴패니언 기병대를 앞으로 내보내지 않고 페르시아군을 공격할 결정적인 타이밍을 노렸다. 알렉산더는 부대의 전열을 커다란 쐐기 모양으로 편성했고, 그 뒤편에서 팔랑크스 병사들이 바리케이드를 쳐 알렉산더가 자유롭게 전선을 떠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자 알렉산더는 기병의 대부분을 이끌고 다리우스의 본진 앞으로 밀고 들어갔다. 다급해진 다리우스는 기병대로 알렉산더의 진군을 막게 했지만 알렉산더는 다리우스가 눈치 채지 못하게 페르시아 경보병 사이로 들어가 천천히 다리우스의 본진을 압박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페르시아의 좌익과 다리우스의 본진 사이에 빈틈이 생긴 것이다. 알렉산더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컴패니언 기병대를 이끌고 빈틈으로 진격했고 보병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알렉산더의 쐐기형 돌파는 다리우스의 부대를 양분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그 돌파된 간격으로 알렉산더군은 전형적인 방진 형태로 돌진했다. 다리우스군은 다시 양 측방의 기병대로 하여금 알렉산더군을 포위하기 위해 좌우익 후방을 공격하게 했으나 미리 예측한 알렉산더는 예비대인 엄호 경보병과 기병으로 이를 격퇴했다.

알렉산더의 놀라운 선견지명이다. 가우가멜라 전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미리 준비한 예비대를 이용한 전례로서 그 가치가 높다. 기세를 잡은 알렉산더군의 맹렬한 공격 앞에 페르시아군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알렉산더는 다리우스군에 대한 총 추격을 명령했는데 해질 때까지 쉬지도 않고 다리우스를 추격했다. 다리우스는 박트리아까지 쫓기고 결국 부하 총독인 베수스에게 죽었다. 이로써 페르시아 제국은 결국 무너졌다.

손자병법 허실(虛實) 제6편에 보면 “승리는 만들 수 있다(勝可爲也)”는 말이 있다. 승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승리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알렉산더에게는 승리에 대한 남다른 감각이 있었고 그에 따라 승리를 만들어 나갔다. 페르시아군과 진영을 마주 보고 대치할 때 그들을 지치게 하는 전략을 많이 사용했다. 동시에 자신의 부대는 편안하게 쉬며 힘을 비축했다.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그렇게 했고, 그 후 기원전 326년에 있었던 인도와의 히다스페스 전투에서도 그렇게 했다. 적의 진영 앞에서 밤새 북을 치고 횃불을 올리는 행위로 상대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했고,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가중시켜 나중에는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이는 손자병법 시계(始計) 제1편에 나오는 ‘적이 편안히 있으면 피로하게 만들라(佚而勞之)’의 병법이다. 육체가 무너지면 정신까지 영향을 미쳐 건전한 판단을 흐리게 하며, 정작 싸울 때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알렉산더의 사선대형이나 쐐기대형, 그리고 예비대의 운용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창의적 발상이었다. 특히 사선대형은 훗날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를 벤치마킹해 오스트리아군을 상대한 로이텐 전투에서 승리했다. 쐐기형 돌파의 핵심은 지휘관의 위치다. 가장 위험한 맨 앞에서 병력을 이끌어야 한다. 알렉산더는 대열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병력을 지휘했다.

승리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이렇게 여러 노력이 조합을 이뤄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리더의 전략과 리더십에 달려 있다. 알렉산더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무엇보다도 여러 문화를 수용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지역과 인종을 구분하지 않고 품었다. 그는 자주 “나의 주장에 동조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우월적 시각으로 다른 민족의 문화를 낮춰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칼의 정복자가 아닌 인간과 문화를 이해하는 힘으로 세계를 정복한 영웅이기를 바랐다.

계략을 짜는 데 능란했던 중국 전국시대의 기인 귀곡자(鬼谷子)는 고수의 승리비결 열 가지를 제시했다.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나와 함께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람을 잘 파악해야 한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을 파악하는 것은 일을 성공시키는 관건이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같이 일할 상대가 나와 완전히 의기투합할 수 있는 사람인지 살펴야 한다. 만약 상대가 나에게 투합하지 않으면 나 자신을 바꾸어 상대와 투합해야 한다.” 그리고 덧붙였다. “대단한 인재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다 쓸 수 있는 것이다. 상대의 실력과 의지를 파악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을 용도에 맞게 쓸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서로 원하는 바, 즉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같이 투합할 수 있다.” 세계정복이라는 명확한 비전 제시와 통합 리더십을 발휘한 알렉산더는 귀곡자와 그 승리의 맥을 같이하고 있다. 고수는 서로 통하는 법이다.
자신을 바꿔서라도 상대와 의기투합하라

카이사르는 스페인에서 알렉산더의 전쟁 이야기를 듣고는 눈물을 흘렸다. 이때 친구들이 왜 우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지금 내 나이에 수많은 민족을 지배했는데, 나는 내세울 만한 명예로운 업적이 없으니 어찌 울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카이사르를 울게 만들었던 천하의 알렉산더도 근사하게 전쟁터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열병으로 침대에서 죽었다. 기원전 323년 새로운 도읍지 바벨론 왕궁에서 죽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3세였다. 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명의들이 수없이 다녀갔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걱정하는 측근에게 그는 말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게. 사람이란 죽으면 잠을 자게 되는 법, 살아 눈 뜨고 있는 이 순간 어찌 잠잘 수 있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귀중한 시간을 가장 충실하게 보내리라.” 그리고 마침내 운명할 때 사람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내가 죽거든 묻을 때 손을 밖에 내놓아 남들이 볼 수 있도록 하시오. 나는 단지 세상 사람들에게 천하를 쥐었던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함이오.” 승리에도 이유가 있듯이 큰 인물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삶의 진실을 알고 모든 것을 품는 포용력이다. 손자가 말한다. 세상의 리더들이여, 알렉산더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가? 그렇다면 품어라. 적어도 내 안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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