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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2002년 이회창 모델로 돌아가고 있다”

중앙선데이 2012.04.21 23:48 267호 6면 지면보기
정두언(서울 서대문을·사진) 새누리당 의원은 4·11 총선에서 625표 차로 당선됐다. 선거 당일 방송 3사 합동출구조사에선 그의 낙선이 예상됐었다. 그만큼 초접전이었다. 서울 강북 지역은 전통적으로 야권세가 강하다. 그는 강북 지역 26곳에서 살아남은 4명의 새누리당 의원 중 한 명이다. 용산의 진영 의원과 함께 서울에 있는 새누리당 3선 의원 2명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정 의원은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 중 하나였다.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그는 정무부시장이었다.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나서자 기획본부장을 맡았다. 하지만 정권 출범 후 줄곧 이 대통령에게 반기(反旗)를 들었다. 지금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맞서는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다. 4·11 총선을 계기로 새누리당은 누가 봐도 분명한 ‘박근혜당’이 됐는데 그는 계속 당의 개혁과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정두언은 왜 자꾸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모두와 충돌하는 것일까. 20일 오전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그를 만나 새누리당의 문제점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새누리당 ‘이대로는 안 되는’ 이유

-선거를 치러 보니 서울 민심이 어땠나.
“민심이 그 정도로 나빠져 있을 줄은 나도 몰랐다. 깜짝 놀랐다. 기본적으론 이명박 정부를 심판해야겠다는 마음이 팽배해 있었다. 2년 전 지방선거 때 그런 민심이 드러나 참패했는데 그 후 국정 운영이나 집권당 돌아가는 게 변화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유리하게만 생각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은 수도권에선 박근혜 위원장의 전폭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친박근혜계 현역 의원들이 거의 낙선했다는 점이다. 수도권 친박의 몰락이다. 홍사덕·김영선·권영세·구상찬·송영선·김선동·손범규·권영진 등등이다. 수도권에선 박 위원장이 도움이 안 됐다는 증거다. 정몽준·이재오·정두언·김용태는 살아남았지 않았나.”

-그래도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수를 얻지 않았나.
“야당이 너무 잘못해 새누리당이 반사적 이익을 얻었을 뿐이다. 야권연대와 나꼼수를 맹신해 오만한 선거를 치렀다. 결국 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등에서 오버해 ‘대항 심판론’의 빌미를 만들었다. 대표 정책도 없었다. 예컨대 지방선거 때는 무상급식, 이후엔 반값 등록금 등의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책 어젠다 없이 선거에 나왔다. 그래서 표면적으론 새누리당이 이겼는데, 꼼꼼하게 따져 보면 연말 대선엔 적신호가 켜졌다. 아주 분명한 적신호다. 새누리당이 승리했다고 보는 건 착시다.”

-왜 그렇게 보나.
“우선 수치가 그렇다. 새누리당은 172석에서 152석으로 20석 줄었다. 야당은 89석에서 127석으로 38석 늘어났다. 선거 결과 전체 지역구 득표에선 새누리당이 야권연대에 12만 표, 정당 득표에선 84만 표를 졌다. 54% 투표율에서 이렇게 졌는데, 투표율이 70%에 이르는 대선이라면 새누리당은 150만 표 이상으로 패배한다. 너무 간단한 수치인데 우리는 이겼다고 좋아하니 바보 같은 상황이다. 수도권 중간층을 다시 여권 지지로 돌려놓지 않는 한 대선에선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번 대선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 입장에서 아주 심플한 선거다. 야당과의 싸움이 아니라 박근혜 대 박근혜의 싸움이다. 박근혜가 변신에 성공하면 이기는 거고 변신을 못 하면 진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취약점을 과감하게 버리고 좀 더 자유민주적인 가치를 부각시켜야 한다. 또 공정한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수도권 중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박 위원장 외엔 대안이 없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박 위원장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야권 후보에게 밀리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거다. 2002년 이회창 모델이다. 돌이켜 보면 10년 전 대선도 이회창 대 이회창의 싸움이었다. 이회창 후보는 권력에 안주하느라 변신을 못해 진정한 권력을 잡지 못했다. 박 위원장 주변은 지금 권력을 누리려고 갈등이 벌어지고 싸움이 벌어진다. 2002년 이회창 모델과 비슷한 양상이다. 오히려 더 강해진 느낌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성공은 ‘뉴(New) DJ 플랜’ 때문이었다. 박 위원장의 성공 여부는 ‘뉴 박근혜’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다.”

-구체적으론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건가.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감동하고 신뢰한다. 기득권에 연연하면 실망한다. 지금 새누리당은 총선을 거치면서 1인 지배체제로 바뀌었다. 박 위원장은 굉장한 기득권을 갖게 됐다. 박 위원장이 그런 불공정한 상황에서 기득권을 버리고, 더 공정해야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다. 또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사람들은 권위주의 정치체제로 돌아갔다고 생각한다. 박 위원장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회복시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예산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자세를 바꾸면 가능한 일이다. 경제 민주화를 말하면서도 그걸 실행할 수 있는 인사는 박 위원장 주변에 없다. 말로만 경제 개혁, 경제 민주화한다. 이래서야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겠나. 김성식·정태근 같은 사람들을 당으로 복귀시켜서 이런 역할을 줘야 한다.”

-기득권을 어떤 식으로 버리라는 건가.
“대선후보 경선을 국민경선으로 과감하게 바꾸는 게 기득권을 버리는 자세다. 그래도 박 위원장이 너끈하게 이길 거다. 그런데 못할 이유가 뭔가. 완전 국민경선제로 가야 한다. 중앙당을 폐지하는 문제도 당 쇄신 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그때 박 위원장은 ‘시간을 두고 검토하자’고 답했다. 도대체 언제 하자는 말인가. 중앙당 폐지안이 나온 것은 총선·대선 승리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당정치를 선진화하자는 거였다. 그런데 검토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당대회를 치르면 신뢰의 문제가 생긴다.”

-수도권 민심이 나쁜 것은 이명박 정부 심판론 때문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나.
“공정과 공생이 시대정신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공정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분노가 가득하다. 또 공생이 아닌 갈등과 대립에 너무 지쳐 있다. 물론 이명박 정부에서 더 그렇게 됐다. 그렇지만 박 위원장이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되는 상황이다. 공천 과정에서 친이(親李)는 거의 배제됐다. 또 한나라당은 늘 갈등과 대립이었다. 야당과 공생해야 하는데, 여당 내부에서도 공생을 못 했다. 경제 민주화하겠다면서 김종인 전 의원은 사라지고 나성린·유일호 같은 분들이 등장했다. 이런 상태에서 수도권 중간층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나.”

-공천이 불공정했다고 보나.
“그렇다. 한마디로 독재 공천이었다. 18대 국회 공천보다 훨씬 더 일방적이었다. 4년 전엔 그래도 공천위원회에서 절충하고 타협도 했다. 명단도 통보받았다. 하지만 이번엔 알려 주지도 않았다. 공천심사 과정에서 친이명박계는 소통의 통로가 전혀 없었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 수도권 중간층이 호의적일 이유가 없지 않나. 다만 야당 공천이 너무 잘못돼 선거에선 우리 당의 잘못된 공천이 묻혀졌다.”

-어떤 지역의 공천이 그랬나.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공천에서 탈락한 부산 수영이 대표적이다. 공천 땐 비슷한 성격의 의혹에 대해 어떤 사람에겐 엄격했고 어떤 사람에겐 물렁했다. 껄끄러운 사람을 털어낸 방식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누가 봐도 돼야 하는 사람은 공천심사 과정에서 미리 빼버렸다. 나이가 많다거나 스펙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댔다. 두 번째는 그런 사람에 대한 네거티브가 들어오면 소명 절차도 없이 제외했다. 경선에 가면 친이계 후보를 볶아대 본선에서 기진맥진 떨어지게 만든 경우도 있다. 제일 교묘한 것은 컷 오프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공정과 공생은 이명박 정부의 통치철학 아닌가.
“내세우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게 통치철학이다. 5공 때는 민주정의사회 구현이 통치철학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불공정의 상징인 ‘형님’을 놔둔 채 공정사회를 이야기했다. 그러니 먹혀들 수 없는 구조다. 국민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권세 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부인이 나서는 것도 국민이 고깝게 본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형님과 그런 형님을 배경으로 한 철부지 불한당이 국정을 농단했다. 이런 불공정을 보고 국민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거다.”

-형님은 선출직인 국회의원이다.
“선출직만큼 일하지 않았다.”

-무슨 얘긴가.
“세계는 젊은 사회, 첨단사회로 가고 있다. 미국·영국 모두 40대 지도자가 국가를 운영한다. 이명박 정부는 70대와 70대를 등에 업은 철부지 불한당이 국정을 주도했다. 그 자체가 시대에 안 맞는다. 게다가 불공정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엔 김근태 잡아가고 고문하는 게 독재였지만 지금 학생들의 기준으로 보면 김제동·김미화 출연 못 하게 하는 게 독재다. 기준이 달라졌다.”

-다음 달 15일 전당대회에선 어떤 분이 대표가 돼야 한다고 보나.
“새누리당은 모든 게 수도권 중간층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우선순위를 맞춰야 한다. 당 대표든, 원내대표든, 이미지든, 홍보든 뭐든지 거기에 맞춰 뉴 박근혜를 만드는 데 모든 일을 다해야 한다. 당 대표도 거기에 맞는 사람이 해야 한다.”

-수도권 대표론으로 당 대표에 도전하나.
“다음 달 전당대회란 게 결국 박 위원장 의중에 달려 있다. 내가 뭘 하겠다고 해서 안 되는 그런 상황이다. 내가 뻔히 알고 있는데 당 대표에 도전하겠다는 생각은 애당초 안 한다. 다만 박 위원장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자세로 판단한다면 결론은 나와 있다.”

-박 위원장이 중립을 선언하면 되지 않나.
“우리가 정치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얘기가 의미가 있나. 공천이고 뭐고 다 관여 안 했다고 항상 그러는 거죠, 뭐.”

-박 위원장이 밀어 주지 않을 거란 얘긴가.
“그렇다.”

-수도권만이 아니라 부산·경남 민심도 많이 흔들리지 않았나.
“낙동강 전선이 무너졌다. 그런데 이 점을 봐야 한다. 이번 선거는 지역대결·이념대결 구도보다 세대대결 구도가 부각된 것이다. 수도권의 패인도 그래서다. 우리가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이긴 것도 세대 간 투표가 강해져서다. 지금은 강남·분당보다 새누리당에 더 좋은 지역구가 양평·가평이다. 노인분들이 많은 지역이다. 신 여촌야도(與村野都)다. 부산·경남도 마찬가지다. 박 위원장이 수도권, 부산·경남, 20~40대의 벽을 뚫어야 하는데 길은 하나다. 중도 이미지, 경제 민주주의의 길이다.”

-야당 대선후보는 어떻게 될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박근혜 대 박근혜다. 지금 대선판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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