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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술을 배우자

중앙선데이 2012.04.21 23:35 267호 30면 지면보기
지난 3일 서울지하철 남부터미널역에서 중앙일보 김태성 기자가 심장마비로 숨졌습니다. 나이 37세, 너무나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심한 가슴 통증을 느낀 그는 병원에 들르겠다고 회사에 전화한 뒤 2~3분 만에 쓰러졌습니다. 승객의 신고를 받은 역무원들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119구급차로 후송했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뒀습니다. 불과 10여 분 사이, 멀쩡하던 사람이 황당하게 죽음을 맞게 된 겁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해마다 2만여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 가족이, 친구가, 동료가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는 게 현실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참사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양 모두들 아무런 대비 없이 살아갑니다. 가까운 사람이 쓰러지고 나서야 가슴을 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조용철 칼럼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에서 학원버스를 운전하던 40대 기사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져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이보다 한 달 전 서울에서도 60대 운전기사가 운전 중 가슴 통증으로 인해 사고를 냈습니다. 모두 심근경색이 원인이었습니다. 운전 중에 발생한 심정지(심장마비)는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다행히 승객들의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기사는 모두 사망했습니다.

식생활의 서구화와 노령화로 최근에 심근경색, 뇌졸중 등 심·뇌혈관 질환이 급증하면서 심정지로 인한 사망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사람은 심장이 멈춘 지 4분이 지나면 뇌손상이 시작되고 10분이 지나면 뇌사 상태에 빠져 심폐소생술 같은 응급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곧 사망하게 됩니다. 대한심폐소생협회 노태호(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홍보이사에 따르면 심정지는 대부분 집이나 공공장소에서 발생하는데 최초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비율은 1.4%에 불과합니다. 이로 인해 생존해서 퇴원하는 사람이 2.5%밖에 되지 않습니다. 스웨덴 14%, 일본 10.2%, 미국 8.4%의 생존율과 비교하면 격차가 너무 큽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심장마비 환자를 최초로 목격한 사람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생사가 ‘운명의 4분’에 달려 있는 겁니다.

심정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10분이 넘습니다. 그동안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는 뇌사상태가 됩니다. 심각한 뇌손상이 된 뒤에도 심폐소생술로 심장이 다시 뛰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가족은 소생의 기쁨과 동시에 현실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뇌손상으로 식물인간이 된 사람을 위해 온 가족이 시간과 돈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도 결국은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심폐소생술은 위험에 빠진 가족과 이웃뿐 아니라 결국 우리 자신을 구하는 것입니다.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면 즉각적인 심폐소생술과 함께 일종의 전기충격기인 자동제세동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자동제세동기는 사고 현장에 있을 가능성이 낮으니 심폐소생술을 배워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정기적인 실습으로, 공공장소에서는 체험을 통해 전 국민이 심폐소생술을 익혀야겠습니다. 얼마 전 소방방재청 이창섭 방호조사과장이 심폐소생술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노래를 만들었더군요. “여보세요. 괜찮으세요? 어! 숨을 안 쉬네. 119로 신고해 주세요”로 시작하는 노래는 심폐소생술 요령도 가르쳐 줍니다. “가슴 압박을 시작해 하나 둘 셋! 팔꿈치를 곧게 펴고 체중을 실어서 이 템포를 유지해. 5, 6㎝ 깊이로 서른 번 압박해 계속해~.”

봄꽃들이 앞다퉈 피고 지는 계절입니다. 세상은 소생하는 생명의 기운으로 흥겹습니다. 하지만 이 계절이 잔인하고 슬픈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졸지에 하늘나라로 보낸 사람들입니다. 며칠 전 벚꽃축제가 한창인 여의도 윤중로를 걸었습니다. 하얀 꽃잎이 흩날리는 도로 위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응급처치 시범을 보이고 많은 시민들이 심폐소생술 실습을 하더군요. 지켜보던 저도 무릎을 꿇고 마네킹 위에 손을 얹어 심폐소생술을 배웠습니다. 축제장의 심폐소생술, 왠지 생뚱맞은 것 같지만 호응도 좋고 효과적인 홍보 방법입니다. 배울 기회가 흔치 않은 심폐소생술, 축제장마다 심폐소생술 체험마당을 만들면 어떨까요. 싱그러운 봄날, 봄 축제에 가시거든 꼭 심폐소생술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언제 내 옆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쓰러질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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