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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일으킨 천재 원숭이처럼

중앙선데이 2012.04.21 23:29 267호 31면 지면보기
‘0’이라는 숫자는 아라비아말로 ‘시파’인데 비어 있다는 뜻이다. 13세기 이후 유럽에 ‘0’이라는 숫자가 처음 전해졌을 때 일반인은 물론 당시 절대지배세력이었던 교회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종교재판관들 중 일부는 ‘0’이란 거의 악마의 수라고 이해했다. 어떤 수와 곱해도 ‘0’이 되고, 아무리 더하고 빼도 그대로이니 이게 무슨 도깨비놀음이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악마의 수’는 ‘혁명의 수’였다.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면서 다른 수의 오른쪽 어깨 옆에 붙이면 그 수가 10배로 증가하니 귀신이 놀랄 일이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 간단한 이치를 깨닫는 데 10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그 이후 ‘교회 부기’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오를레앙의 성처녀’인 잔다르크. 문맹이었던 어린 소녀가 어떻게 전쟁의 최일선에서 군인들을 지휘해 불패의 영국군을 무찌를 수 있었을까? 신기술에 대한 초감각 때문이었다. 당시 막 등장한 ‘대포’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포수는 몇 명 되지도 않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잔다르크가 죽고 수십 년이 지나서도 프랑스 전체의 포병 수는 50명을 넘지 못했다. 이렇게 신무기 ‘대포’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희귀한 시절, 어린 소녀는 신기술을 다루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프랑스를 구해 낸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신기술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런 현상을 ‘잔다르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일본 마가쿠 원숭이 중에 ‘이모(IMO)’라는 이름의 원숭이가 있었다. 일명 ‘천재 원숭이’로 알려졌다. 이 원숭이가 해낸 업적을 살펴보자. 과거에는 모래밭에 떨어진 감자를 먹을 때 손가락으로 모래를 떨어 낸 뒤 먹던 관습에서 벗어나 감자를 바닷물 속에 던져 넣어 씻어 먹었다. 모래밭에 떨어진 쌀을 주워 먹을 때 일일이 손으로 집어먹는 대신 ‘이모’는 모래와 쌀을 함께 퍼다가 물에 던져 넣어 모래는 가라앉히고 떠 있는 쌀만을 먹었다. ‘이모’의 이상한 행동을 눈여겨보던 몇 마리가 모방한 뒤 전체 집단으로 확산됐을 것이다. ‘혁신’은 이렇게 시작된다.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한 집단 내에서 ‘혁신’이 보편화되려면 통상 100마리 혹은 100여 명이 채택할 때까지의 기간이 필요하다.

얼마 전 4·11 총선을 치르고 다들 기쁨과 회한이 교차하고 있던 그 순간, 새누리당의 비상대책위 이준석 위원이 한마디했다. “적합하지 않은 의원 당선인은 출당시켜야 옳다”고. 아마도 그 순간 모두가 조용했을 것이다. 애당초 공천이 안 됐어야 할 인물들이지만 늦었더라도 고칠 것은 고쳐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 위원의 말은 새누리당에만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정치 전반에 대한 고함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사회 혁신과 무능한 정치조직에 대한 혁신 발언이다. 통합진보당의 심상정 당선인이 언론 인터뷰에서 좌파가 그리 부정하던 ‘경기동부연합’이 통합진보당의 실세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도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진정한 발언과 용기들이 우리의 암담한 정치·사회현실에 희망을 주는 요소가 되고 정치 혁신을 가져오는 큰 발자국이 될 것이다. 처음에야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윈스턴 처칠이 어느 학교의 졸업식 연설을 하게 됐다. 그는 연단에 올라 젊은이들을 한참 내려다본 뒤 “절대 포기하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둘러본 후 좀 더 큰 목소리로 “절대 포기하지 마시오!”라고 하더니 또다시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절대 포기하지 마시오!!” 하고 외치고는 연단을 내려왔다. 끝이었다. 조용하던 장내에 기립박수가 한없이 이어졌다. 우리 국민이 기립박수를 칠 일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김재명 부산 출생. 중앙고·성균관대 정외과 졸업. 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으며 전북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 『광화문 징검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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