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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달, 모자람을 채울 때

중앙선데이 2012.04.21 22:46 267호 27면 지면보기
일간지에는 명당이라는 추모공원들의 안내 광고가 자주 등장한다. 불교계 언론에는 ‘세 절 밟기’를 알리는 광고도 자주 실린다. 교통망이 순조롭게 연결되는 지역 유명 사찰들이 ‘삼사(三寺) 순례’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선 까닭이다. 약간의 ‘활자 중독’ 증세와 파적 삼아 읽을 만한 것이 별로 없는 산중 생활인지라 저절로 광고까지 꼼꼼히 살피면서 발견(?)한 사실이다. 모두가 윤달과 관련된 것이었다.

삶과 믿음

두 달 전 2월은 마지막 날짜가 29일이었다. 다른 해는 28일로 마감하는데 올해는 하루를 더 얹어 준 거다. 4년 만에 오는 이른바 윤일(閏日)이다. 실제의 1년과 달력상 하루 차이를 없애기 위한 방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신년 벽두에 윤초(閏秒)라고 하여 1초를 더한다는 뉴스를 접한 것까지 다시 떠올랐다. 협정 세계시(世界時)와 실제 지구 자전·공전의 기준인 태양시(太陽時)의 차이로 인해 1초를 보탠다는 해설이었다. 어쨌거나 1초는 말할 것도 없고 하루 정도는 더하거나 빼거나 별로 실감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래서 둘 다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올해는 2월 윤일에 이어 4월 21일부터 한 달간의 윤달, 즉 ‘윤 3월’이 들었다. 알고 보면 근거는 다르다. 윤일은 양력에 의거한 것이고 윤달은 음력에 따른 것이다. 달(月)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 1년은 354일이다. 양력에 비해 11일이 모자라는 까닭에 4년을 주기로 한 달씩 보탠 것이라고 소싯적 과학시간에 배웠던 기억까지 애써 더듬어야 했다.

사실 2월 29일의 혜택이라고 해 봐야 공과금 마감이 하루 정도 늦춰지는 것뿐이다. 혹여 그날 태어난 아이는 생일상을 4년마다 한 번씩 받는 억울한 일을 당할 수는 있겠다. 구세대의 함자에는 ‘윤’ 자를 넣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름 속에서 윤달에 태어났음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진짜 생일은 언제 돌아올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윤삼월이 19년 만이라고 하니 그 정도 세월은 흘러야 할 것 같다.

음력과 양력을 함께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윤달의 비중은 윤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조선시대 홍석모(洪錫謨·1781~1857) 선생은 동국세시기라는 저술을 통해 ‘윤달은 천지의 영적인 기운도 인간사를 간섭할 수 없는 기간’이라고 했다. 그래서 산소 이장을 비롯한 심리적으로 위축될 만한 일은 주로 이 시기를 이용해 해결했다. 21세기에도 윤달의 이삿짐센터는 호황이고 예식장 일정은 개점 휴업상태다. 음력의 힘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달력은 양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태양만큼 달도 실제로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까닭이다. 그래서 양력과 음력은 중도(中道)적으로 사이좋게 공존해 왔다.

어쨌거나 윤초와 윤일, 윤달은 모두가 모자라서 보태는 일이다. 동국세시기는 “강남 봉은사는 윤달을 맞이하여 한 달 동안 서울 장안의 인파가 끊어지지 않았다”고 해 윤달엔 모자라는 신심(信心)도 보충했음을 전한다. 바깥일은 말할 것도 없고 내면세계의 허(虛)함도 함께 채웠던 것이다. 늘 안팎으로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것이 우리들의 일상사다. 하지만 모자라서 보태는 것만큼 넘쳐서 덜어 내는 일도 중요하다. 윤달 동안 넘치고 모자람을 잘 살펴 덜어 낼 건 덜어 내고 보탤 것만 보탤 일이다.



원철 한문 경전 연구 및 번역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하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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