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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 파는 할매,어물전 아재,국밥 마는 아짐,구수한 입담은 덤...

중앙선데이 2012.04.21 21:15 267호 21면 지면보기
1 구례장의 중앙 통로에 자리한 채소전. 들판에서 캐거나 집에서 손수 키워 바리바리 싸들고 나온 할머니들의 채소 한마당.2 구례장 가는 읍내 버스는 거개가 벚꽃길로 다닌다.3할머니들은 마을별로 정해진 구역에 모여좌판을 펼친다.4 꽃이불보다 더 화려한 꽃은 없다.5 할미꽃은 야생화로 인기가 좋아 장마당에 자주 나온다.
약재로 유명한 200년 역사의 3·8장
지리산의 봄은 구례의 명물인 오일장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구례 오일장의 봄은 장터거리 곳곳에 자리한 할머니들의 좌판 바구니에 가득 차 있다. 쑥, 냉이, 달래, 씀바귀, 두릅, 시금치, 부추, 민들레, 취나물, 머위, 고사리 등속이 지나는 이들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구례 오일장의 봄나물 취재를 위해 자연음식 연구가 박주현(46)씨에게 동행을 청했다. 지난해 ‘대처에서 살다 슬쩍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왔다’는 박씨는 구례 오일장은 으레 들른다고 했다.‘구례 읍내장’이라고도 불리는 오일장은 3, 8일장이다. 그러니까 매달 3·8·13·18·23·28일, 그렇게 한 달에 여섯 번 장이 선다. 구례읍 봉동리 189-5번지가 그 주소지다. 부지 면적 2만264㎡, 건축 면적 약 4000㎡라는 기록은 남겨두기로 하자.

지리산 자락 구례 오일장을 가다


구례 오일장은 인근 하동이나 곡성·남원보다 크고, 옛 전통장의 훈훈한 정취가 아직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례장은 200년 역사를 자랑한다. 하동포구에서 시작된 섬진강 물길은 구례까지 닿았고, 조선시대에는 섬진강 뱃길을 따라 다른 지역의 상인들도 이곳까지 와서 물건을 거래했다고 한다. 봉동리 장터는 한때 구례 상설장 쪽으로 터를 옮겼다가 1950년대 후반 다시 봉동리에 정착했고, 2000년대 들어 전통 오일장을 되살리는 취지에서 30여 동의 한식 장옥과 4동의 정자를 갖춘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6 이제 막 ‘출근’해 좌판을 펼치는 할머니들.
목기시장으로 유명했고 한때는 우시장으로도 이름을 날렸던 구례 오일장은 최근에는 오일장 나들이 코스로 빠지지 않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장터는 가동(어물전)·나동(잡화전)·다동(채소전)·라동(싸전)으로 이루어져 있어 정말 ‘없는 것은 없고 있는 것은 다 있다’. 구례 오일장을 빛내는 것은 특산물일 터. 구례 특산품인 산수유를 비롯해 당귀·생지황·백지·백봉령·겨우살이 등 한약재가 많이 거래되는 약재시장으로 유명하다. 장터 한쪽에 약재 골목이 형성돼 있다. 약선 음식을 공부하는 박주현씨에게 이곳 약재상 순례는 필수 코스다.

7 장터에서 빠질 수 없는 뻥튀기 가게. ‘뻥이요~’라는 할머니의 외침과‘뻥’ 터지는 소리가 동시에 난다.8 장마당 순례의 첫걸음은 주막집이다.9 쪽파 다듬기에 여념이 없는 할머니들. 줄담배 할머니는 항상 줄담배다.10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미소. 그냥 고맙다.11 2만~3만원에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들.12 민들레·부추는 겉절이로, 엄나무순·두릅은 데쳐서,쑥부쟁이·머위·취나물은 삶아서 무쳐 먹는다.
그 약재 골목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다 사겠다”는 소비자와 “다는 못 판다”는 판매자의 이상한 실랑이가 그것이다. 내용인즉 귀한 봄나물인 엄나무순을 독점 구매하겠다는 박씨와 몸에 좋은 그것을 자식들 먹이려고 남겨둔 것이라며 버티는 주인장과의 다툼이었다. 시장에서의 흥정이 그렇듯 결국 절반 정도만 사고파는 것으로 낙착됐다.
박씨는 “개두릅이라고도 하는 엄나무순은 두릅보다 맛과 향이 진하며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 사포닌, 항산화물질, 항암·항균 성분들이 포함돼 있어 산삼나무라 불린다”며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장아찌를 담그기에도 아주 훌륭한 식재료”라고 설명했다.

11 2만~3만원에 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들.12 민들레·부추는 겉절이로, 엄나무순·두릅은 데쳐서,쑥부쟁이·머위·취나물은 삶아서 무쳐 먹는다.
박씨는 채소전으로 옮겨 두릅과 씀바귀, 부추, 취나물, 머위, 쑥부쟁이 등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길가에 좌판을 늘어놓고 있는 ‘할머니 채소가게’는 달랑 산나물 한 종류만 들고 나온 노인부터 각종 산나물에 참기름과 산수유 등 지역 특산물을 펼쳐놓은 아주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채소전은 1읍·7면·69리·152마을로 구성된 구례군의 행정구역에 따라 마을마다 정해진 구역이 있어 늘 그 자리에서 ‘영업’을 한다.

두릅·씀바귀·머위 ...봄나물 총집합
할머니 채소전을 기웃거리다 조금은 진귀한 풍경을 목격했다. 등이 많이 굽은 시골 할머니와 허리 꼿꼿한 도시 할머니의 거래였다. 머리 허연 도시 할머니가 채소 좌판을 지나다 유독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 좌판을 한동안 응시한다. 팔순을 훌쩍 넘긴 것으로 보이는 채소가게 할머니는 머위 한 다라이(대야)가 가진 것의 전부다.
도시 할머니: 어르신, 그거 다 얼마예요?
시골 할머니: 6000원.
도시 할머니: 다 주세요.

지갑을 뒤지던 도시 할머니가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카드는 가득한데 현금이 없다. 일행을 급히 찾는다. 며느리쯤으로 보이는 일행에게도 현금 6000원이 없다. 도시 할머니의 표정은 더 어두워지고 시골 할머니는 그저 무표정하게 도시 할머니 일행을 쳐다본다. 며느리 지갑에서 딱 3000원이 나왔다. 난처한 도시 할머니가 절반만 달라고 한다. ‘얼마나 허리 굽히는 일을 했으면 저 정도 굽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굽은 시골 할머니는 머위 반 다라이를 봉지에 넣고 듬뿍 덤을 얹어 넣는다.

구례가 지리산 자락이라고 산나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임해(臨海)도시인 순천과 여수가 가깝기 때문에 구례장의 어물전은 늘 들썩거린다. 남녘 지방에서는 최고의 봄 보양식으로 통하는 주인공 도다리가 어물전 상전으로 떡하니 누워 있고 고등어, 갈치, 볼락, 우럭, 갑오징어, 금풍생이 등의 물고기들이 미식가들을 유혹한다.구례 오일장에는 대장간도 볼거리다. 새빨간 불에 낫과 호미, 칼 등을 달구고 메질과 담금질을 하는 대장간 풍경은 ‘한 세대 후쯤에는 사라질 풍경’이어서 아이들의 산 교육장이기도 하다.

장터에서 빠질 수 없는 뻥튀기 점포도 세 곳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세개에 1000원’ 하는 도넛 가게도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수십 종의 묘목을 파는 중년의 나무장수가 있는가 하면, 백자단과 기린초 등 다양한 종의 야생화를 판매하는 총각도 눈에 띈다. 조그만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생강 모종 더덕 모종이요”를 외치는 ‘아짐’도 있고, 요즘 무덤가에서 사라졌다는 할미꽃 몇 다발을 내놓고 있는 ‘아재’도 손님을 기다린다.

장터국밥집 ‘아짐’의 건배사
장터에서 국밥집을 어떻게 지나치랴. ‘시골 사람들의 부질없는 탄식이나 분노를 하냥 들어주며 배시시 웃는 보살’ 같은 국밥집 아주머니는 이곳에서도 볼 수 있다.
봄비 부슬부슬 내리던 4월 13일장 오전 10시쯤, 간판도 메뉴판도 없는 국밥집에서 일단의 촌로들과 ‘국밥집 아짐’이 막걸리 사발을 부딪친다. 아짐 왈 “자자, 건배. 아가씨 만나 이~ 자, 위하여” 아짐의 건배사는 외롭다고 투덜대는 촌로에게 애인 생기기를 바란다는 덕담인 셈이다.

장이 서는 날 문을 여는 짜장면집도 있다. 연예인 이승기가 TV 프로그램 ‘1박2일’의 ‘전국 오일장 특집’ 편에 출연해 짜장면을 먹어 유명해진 집이다. 또 팥칼국수와 수제비만으로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칼국수집이 있다. 접시 한 가득 전을 채워넣고 1만원 받는 부침개집도 문턱이 닳을 정도로 분주하고, 돼지 내장과 부추가 조합을 이룬 돼지국밥집도 늘 북적인다. 이렇듯 봄날의 구례 오일장에는 푸짐한 덤이 상징하는 넉넉한 인심, 흉내내기 힘든 전라도 사투리의 투박하면서도 살가운 입담이 넘실댄다. 그윽하고 아늑한, 그리고 푸근하고 구수한 구례의 봄이 그렇게 무르익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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