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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은 말한다, 임나일본부설은 허구

중앙일보 2012.04.21 00:00 종합 8면 지면보기
전남 순천의 운평리 고분군에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반박할 수 있는 대가야계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사진은 발굴된 대가야계 토기. 일본은 운평리 고분군이 있는 사타(沙陀·순천의 옛 지명)를 임나사현 중 하나라고 주장했으나 이번 발굴로 허구임이 밝혀졌다. 한국 고고학계는 임나사현은 대가야의 지배를 받던 4개 마을(지도상 대사·帶沙, 지금의 순천·광양·여수)에 한정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순천대 박물관]


전남 순천의 운평리 고분군에서 일본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허구를 입증하는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일부 일본학자들이 주장해 온 임나사현(任那四縣) 지역에서 대가야계 유물만 출토되고 일본계 유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천 운평리 무덤 출토 200여점
대가야계 지배층 유물로 확인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 영역서
일본계 유물은 하나도 안 나와



 순천대학교 박물관(관장 강성호)은 순천시 서면의 운평리 고분군에 대한 3차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계 고총고분 2기에서 대가야계 유물 200여 점을 발굴했다고 20일 밝혔다. 발굴된 순금제이식(純金製耳飾·귀걸이), 마구류(馬具類), 대도(大刀), 꺽쇠, 토기류, 옥 등은 대부분 6세기께 대가야계의 유물로 확인됐다. 호남 동부를 비롯한 가야 지역을 일본이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후대에 조작됐음을 확인해 주는 결정적인 증거들이다.



 운평리 고분군은 일본이 주장해 온 임나 4개 현(縣) 중 하나인 사타(沙陀·순천의 옛 지명)에 속해 있다. 전남 동부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고총(古塚·무덤)이 남아 있는 가야계 고분군으로 2006년과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발굴이 이뤄졌다. 이번에 발굴된 고총은 백제가 전남 동부권을 장악하기 직전인 서기 500년 무렵 순천 지역 지배층의 무덤으로 확인됐다. 경북대 박천수 교수는 “이번 발굴은 임나일본부가 영산강 유역까지 뻗쳐 있었다는 일부 일본 학자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결과”라며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일본 상류층과 잦은 교류를 했을 ‘사타’의 지배층 무덤에서 일본의 유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이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내 고대(古代) 사학계에서는 ‘임나사현’을 대가야의 영역인 전남 순천·광양·여수로 봐왔다. 따라서 순천대의 이번 발굴은 국내 사학계의 견해를 고고학적으로 증명하는 성과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동희 순천대 학예연구실장은 “운평리 발굴을 통해 일본이 주장해 온 임나사현이 대가야의 연맹체인 4개 고을이었음이 밝혀졌다”며 “4년여에 걸친 발굴로 임나사현의 위치와 내용이 조작됐음을 증명하는 성과를 남겼다”고 말했다. 순천시는 이날 자문회의를 열어 운평리 유적에 대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순천=최경호 기자



◆임나일본부설=4세기 중엽∼6세기 중엽 일본 야마토(大和) 정권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다는 주장. 『일본서기(日本書紀)』의 6세기 초 기록에 나온 ‘임나사현을 백제에 할양했다’는 내용을 토대로 한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왜곡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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