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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강운구의 쉬운 풍경 <6> 세 시간 기다려 찍은 사진

중앙일보 2012.04.21 00:00 종합 15면 지면보기
충청북도 보은 내북, 1997 ⓒ강운구


어떤 대상을 보자마자 찍을 수도 있고 기다렸다가 때가 오면 찍을 수도 있다. 길게는 1년 가까이를 바칠 수도 있다. 이 사진은 장승(동자석인 듯한데 이것의 맞은쪽에도 역시 느티나무 아래에 하나 더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마을에서는 장승으로 삼은 듯하다)의 얼굴에 빛이 들 때까지 세 시간쯤 바라보다가 찍었다. 장승이 그 자리에 없었더라도 찍으면 사진이 될 풍경이다. 그러나 ‘자동설치’된 텔레비전 수상기와 대조를 이루는 장승을 만나기란 쉬울 수 없다. 그래서 장승이 도망이라도 갈까 봐 조바심을 내며 그 언저리에서 세 시간쯤, 흘깃흘깃 안색을 살피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다.



이 땅의 산하에 엉뚱한 쓰레기로 버려진 텔레비전 수상기들을 볼 때마다 나는, 긴 전깃줄로 어디선가 전기를 끌어다가 켜보고 싶어서 몸이 달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면 아마 대부분은 계속해서 묵묵하게 침묵에 잠겨 있을 것이고, 비를 맞아 습기에 차 있던 것들은 합선이 되어 불꽃과 연기를 뿜으며 터지기도 할 것이고, 혹시라도 다른 어떤 것들은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흔들리는 희미한 영상을 보여주기도 할 것이다. 밝을 때는 그런 흔들리는 희미한 영상은 잘 안 보인다. 그러므로 어둑어둑해져 가는 저물녘에, 푸른 산그늘이나 놀이 짙어져 가는 들판에 있는 엉뚱한 것들이 도깨비 불빛인 듯이 번득이는 것을 비디오로 찍으면 뭔가를 보여주는 미묘한 영상이 되겠다 싶었다. 이왕이면 내친김에 안테나까지 연결해서, 이 시대의 얼굴들이 산자락이나 밭두렁 같은 데 거꾸로 또는 모로 누워서 뭐라고 하는 말도 들으며 영상을 볼 수 있게 한다면 더 그럴싸할 듯하다. 그런 것은 텔레비전 쓰레기가 있는 풍경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영상이 합쳐진 이중의 풍경이겠다. 인위적인 ‘설치작품’도 하는 판이니, ‘자동설치’에 행위와 개념을 더한다고 해서 작품이 안 될 리 없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그저 상상만으로 잠깐 신이 났었을 뿐이다. 때에 따라 이것저것 다 집적거리지만, 잘 다스리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여러 구덩이를 파는 작가도 있고, 한 구덩이를 깊고 깊게 파는 작가도 있다. 나는 오지랖이 넓지 못하므로 후자를 동경한다. 일테면, 전위작가라서 ‘날마다 새로운 것’을 하더라도 납득할 만한 이유나 근거가 보이면 인정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일탈(모자라거나 주책이거나 변덕)로 보일 것임이 확실하다.



그저 나는 뭔가 주워 담을 건 없나 하고 소심하게 두리번거리며 하염없이 헤맬 뿐이다. 그러다 보면 이런 ‘쉬운 풍경’이 다가올 때도 있다.



강운구(71)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빌린 카메라로 처음 사진을 찍은 이래 50여 년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왔다. 한국적 시각의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 영상을 개척했다. 글을 무섭게 잘 쓴다는 평도 듣는다. 『경주 남산』 『우연 또는 필연』 등의 사진집과 『시간의 빛』 『자연기행』 등 사진 산문집, 그리고 『강운구 사진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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