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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복의 배신·아내 암살설' 최대 정치스캔들

중앙일보 2012.04.21 00:00 종합 16면 지면보기
보시라이 사건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최대 정치 스캔들로 기록될 듯싶다. 한 남자의 정치적 야망에서 시작된 드라마가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요소를 너무나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심복의 배신, 아내의 영국인 사업가 독살, 아들의 방탕한 유학 생활, 올가을 10년 만의 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벌어지는 격렬한 권력 투쟁 등 각종 사건이 국내외적으로 난마(亂麻)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두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보시라이 스캔들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리고 향후 중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뉴스 속으로] 중국 뒤흔든 보시라이 권력 스캔들
드라마 같은 배신·암살·치정·뇌물
오바마, 후진타오에게 “집에 별일 없나”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관전 포인트 1: 보시라이 사건, 왜 세계적 화제가 되나



스타 정치인 보, 갑작스러운 낙마에 주목

1971년 린뱌오 이후 최대 정치 스캔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보시라이 개인이 갖는 스타성 때문이다. 출신 성분이 좋아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부총리를 역임한 아버지 보이보(薄一波)는 덩샤오핑(鄧小平) 시절 중국의 8대 원로 중 하나로 불렸다. 후광 효과가 컸다. 그 자신도 잘생긴 외모로 호감을 샀다. 또 다롄(大連) 시장→랴오닝(遼寧) 성장→상무부 부장→충칭시 당서기 등을 거치며 여러 ‘튀는’ 실적을 보여 국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유명 인사이기도 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



 둘째는 권력 투쟁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차세대 최고 집단지도부 진입이 확실시되던 인물이다. 그런 그의 갑작스러운 낙마이기에 중국 정가의 판도가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있다. 1971년 마오쩌둥(毛澤東)에 도전했던 린뱌오(林彪) 사건 이래 최대 정치 스캔들로 불릴 정도다. 올가을 예정된 18차 당 대회를 앞두고 세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베일에 가려진 중국의 권력 암투가 이번엔 거의 실시간대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셋째는 소설보다도 더 흥미진진한 소재가 많이 포함된 점이다. 보시라이의 심복으로 1m80cm의 거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조폭 퇴치 영웅이 여장을 하고 미국 총영사관에 들어가 망명 신청을 하는가 하면, 영국인 사업가가 의문의 독살을 당하고, 또 이 외국인과 보시라이 부인이 로맨틱한 관계였는지 등 웬만한 드라마 내용을 뺨치는 메가톤급 스토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형적인 태자당(太子黨·고위관료 자제 출신)인 보의 아들 보과과(薄瓜瓜)의 방탕한 유학 생활이 조미료로 들어가 있다.



관전 포인트 2: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태자당 대 공청단의 치열한 암투

덩샤오핑 같이 통제할 인물 없어




보시라이 사건의 막이 오른 건 2월 6일. 보의 측근인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청두(成都) 미국 총영사관에 노부인으로 변장을 하고 들어가 망명 신청을 하면서다. 왕은 왜 망명을 기도했을까. 배경엔 지난해 11월 충칭에서 발생한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의 사망사건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헤이우드의 사인은 과음으로 알려졌고, 서둘러 화장됐다. 그러나 왕은 이 죽음이 자연사가 아닌 타살이며, 그 혐의자가 보시라이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라는 점을 확신하게 됐고, 이를 보에게 보고했다가 오히려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미움을 사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줄거리는 미국에 서버를 둔 보쉰(博訊)과 둬웨이(多維) 등 인터넷 매체가 먼저 보도했다.



 놀라운 점은 중국 당국이 나중에 이 같은 보도의 일부 내용을 확인해 주는 발표를 한 것이다. 이어 헤이우드는 왜 살해됐는가, 금전 문제인가 아니면 보시라이 부인과의 치정 때문인가, 누가 독살을 지시했는가 등과 관련된 온갖 새로운 뉴스가 영국과 미국·홍콩 언론 등을 중심으로 거의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헤이우드가 뒤를 봐주었던 보과과의 방탕한 유학 생활이 사진과 함께 까발려지고 있기도 하다.



 현재 중국 당국은 보시라이 사건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세 차례 언급했다. 첫째는 3월 14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충칭시 간부들은 “반성해야 한다”며 보시라이를 비난한 것이다. 당시 원자바오는 문화대혁명의 잔재를 씻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가 추진했던 문혁을 연상시키는 충칭 발전 모델을 부정한 것이다. 둘째는 이튿날 중국 당국이 보시라이를 충칭시 당서기에서 해임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셋째는 4월 10일이다. 이날 중국 당국은 보시라이의 엄중한 기율 위반에 대해 조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왕리쥔 사건은 정치사건, 헤이우드 사건은 형사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이 두 사건과 관련해 보시라이의 행위가 당 기율을 엄중하게 위반해 당과 국가에 큰 손해를 끼쳤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의 정치국원과 중앙위원 직무를 정지시킨다고 밝혔다. 또 헤이우드가 타살됐으며 구카이라이와 보시라이의 측근인 장샤오쥔(張曉軍) 등이 혐의가 있어 사법기관에 넘겨졌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의 발표에선 권력투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너무 순진하다. 보다 본질적인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보시라이 사건은 바로 올가을 당 대회를 통해 새롭게 탄생할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둘러싼 격렬한 권력투쟁의 소산이라는 것이 대다수 차이나 워처의 분석이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당 기율검사위원회는 헤이우드가 죽기 전부터 이미 보시라이와 왕리쥔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관전 포인트 3: 권력투쟁이 노리는 칼끝은



보시라이 정법위 서기 될 듯하자

후, 퇴임 후 정치보복 우려 선공




중국 정가는 현재 크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이끄는 공청단(共靑團)과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및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이 미는 태자당이 양립하고 있다. 싸움은 중국에서 무소불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9명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둘러싼 것이다. 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누가 더 많이 자리를 확보하느냐, 또 누가 더 요직을 차지하느냐의 다툼인 것이다.



 태자당인 보시라이가 공청단의 타깃이 된 건 그의 약점이 많았고, 특히 그가 요직 중 요직인 중앙정법위원회의 서기를 맡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정법위 서기는 서열 9위로 정치국 상무위원 중 가장 낮다. 그러나 공안(公安·경찰)과 검찰·법원·국가안전부 등을 장악해 전시가 아닌 평시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갖는다. 이 가장 낮은 자리에 가장 힘이 센 자를 포진시키는 건 중국식 정치 셈법에 따른 결과다.



 이 같은 자리에 보시라이가 발탁돼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총서기에 오르면 그를 도와 부패 척결 등 강력한 사정작업을 벌일 것으로 관측돼 왔다. 태자당인 시진핑이 1인자 자리에 오르는 걸 공청단파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는 시진핑이 정치 보복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보시라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충칭에서의 인정사정 없는 조폭 퇴치 과정이 말해주듯이 무서운 공안정국이 예상되고 있었다.



 후진타오 입장에선 2002년 총서기에 오른 이래 줄곧 장쩌민의 견제를 받아왔다. 당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2004년에야 물려받았고, 경호실장에 해당하는 경위국장과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중앙판공청 주임을 모두 장의 심복인 요우시구이(由喜貴)와 왕강(王剛)이 계속 맡아 집권 1기 5년 내내 장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2007년 시작된 집권 2기에서도 당 감찰기구인 기율검사위원회와 정법위원회 서기 자리 둘을 모두 장쩌민 측근에게 넘겨줘 ‘절름발이 10년’을 보내고 있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정법위 자리를 차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퇴임 후가 편하다고 본 것이다. 이 부분에서 원자바오 총리와도 이해가 맞는다. 후진타오나 원자바오 모두 보시라이가 중앙정법위 서기에 오르면 그 가족들의 경제 활동과 관련해 안심할 수 없는 입장인 것이다. 권력투쟁의 칼끝은 바로 정법위 서기 자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관전 포인트 4: 보시라이 낙마시킨 비결은?



후, 당 기율검사위 내세워 보 조사

측근 꼬투리 잡히자 보 진영 내분




보시라이를 실각시키는 건 쉽지 않았다. 서열 9위로 현재 정법위원회 서기인 저우융캉(周永康)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 왕리쥔이 청두의 미국 총영사관에 들어갔을 때 이 사실을 비밀리에 보시라이에게 알려준 인물로 저우융캉이 지목되고 있다. 후진타오 측이 파견한 인사가 왕의 신병을 확보하기 전에 먼저 손을 쓰라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었다. 또 전인대 기간 보에게 자제를 권했던 인물도 저우로 알려진다. 저우는 마지막까지 보시라이를 자신의 후계자로 강력하게 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3월 19일 밤 저우를 포함한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베이징의 모처에 모여 보시라이 문제를 토론했다. 이게 바로 일부 인터넷 언론이 베이징 내란설을 전하게 된 배경이다. 이처럼 저우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보시라이를 낙마시키기 위해 후진타오 측은 당 기율검사위 서기인 허궈창(賀國强)과 손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원래 허궈창과 저우융캉 모두 장쩌민 및 쩡칭훙 계열의 사람이다. 쩡칭훙이 2007년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에서 물러나는 조건으로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시킨 게 이 둘이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몇 해 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발단은 석유산업 분야의 모 고위 인사 처리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알려진다. 이어 충칭시 당서기가 된 보라시이가 저우융캉을 등에 업고 전 충칭시 사법국장인 원창(文强)을 부패 혐의를 빌미로 사형시키면서 허궈창과 저우융캉 두 사람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다. 원창은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당서기가 충칭시 당서기로 있을 때 왕양을 보좌하기도 했지만, 왕양에 앞서 충칭시 당서기를 역임한 허궈창의 심복이었던 것이다.



 허궈창의 기율검사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보시라이 조사를 위해 그 주변 인물을 캐기 시작했다. 그런 기율검사위의 그물망에 헤이우드나 왕리쥔이 걸렸을 것이란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이들로부터 보시라이에게 불리한 사실을 하나 둘 챙기는 식이다. 구카이라이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을 하게 된 배경이다. 헤이우드는 사망하기 전 친구에게 “내가 그 배신자로 의심받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피살된 건 금전이나 치정 문제가 아니라 보시라이 집안을 배신했다는 의심을 사게 된 결과일 수 있는 것이다. 왕리쥔 또한 마찬가지다. 과거 보와 왕의 밀접한 관계로 볼 때 구카이라이의 독살 혐의를 갖고 둘이 대립했을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둘은 이 문제를 어떻게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상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왕리쥔 또한 기율검사위에 꼬투리를 잡혀 보를 배신하게 되고, 이게 들통이 나 보시라이의 보복을 받을 위험에 처하자 미국 총영사관으로 목숨을 건 망명 시도를 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관전 포인트 5: 권력 암투가 어떻게 실시간대로 알려졌나



왕리쥔 미 망명시도·헤이우드 독살

미·영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




마오쩌둥에게 도전했다 실패하고, 소련으로 도망가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린뱌오 사건은 이듬해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 정도로 중국의 권력 암투는 베일에 싸여 있다. 한데 이번 보시라이 사건을 둘러싼 권력투쟁은 거의 실시간으로 알려지고 있다. 왜 그럴까.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서방 측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일부 확보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시인하고 있지 않지만 왕리쥔이 청두 미국 총영사관에 자료를 건넸을 가능성이 크다. 이 자료의 내용 일부가 매일 조금씩 서방 언론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계속 추문이 터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과 만났다. 오바마는 “집에 별일 없냐”는 의미심장한 인사를 던졌다. 중화권 언론에선 이를 ‘집안이 편할 리 없지 않냐’는 비아냥으로 해석하고 있다.



 둘째는 인터넷 언론의 활약이다. 보쉰 등 일부 인터넷 매체가 왕리쥔으로부터 자료를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보쉰은 보시라이를 ‘최대 간신’이라 욕한 왕리쥔의 공개 서한을 처음 보도하기도 했다. 셋째는 이번 권력투쟁을 둘러싸고 각기 자기 편 언론을 내세워 대리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 측에선 인민일보와 신화사 등 당 중앙의 매체를 이용한다. 반면에 보시라이 지지 세력은 3월 31일 베이징일보에 ‘우리 당이 언제 최고 영도자를 총서기라 불렀나’는 제하의 글을 실었다. 총서기가 당의 영도적 직무를 수행할 뿐 당의 최고 영도기관이 아니라고 지적해 후진타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과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두 세력은 친분 관계가 있는 인터넷 매체에 소식을 흘리는 방식을 이용해 상대방 흠집내기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소문이 사실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아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것이다.



관전 포인트 6: 향후 중국 정가는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후, 일단 자리싸움 유리한 고지 올라

장쩌민파 당하고만 있을지도 관심




먼저 보시라이의 개인적 운명을 보자. 그는 충칭시 당서기에서 해임된 데 이어 정치국원과 중앙위원 자리에서도 쫓겨났다. 그러나 아직은 ‘동지’로 불리고 있어 공산당원으로서의 당적은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조사가 끝나 그에 대한 처벌이 확정되면 당적마저 박탈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정치적 운명은 끝났다. 정치국원에서 해임할 때는 후진타오 측에서 이미 과거 그를 후원했던 장쩌민과 시진핑의 동의를 구한 것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장과 시 모두 보의 분명한 잘못을 보고도 끝까지 변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현재 관심은 헤이우드 독살 혐의의 불똥이 그에게까지 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화권 여러 매체는 보시라이가 헤이우드 외에도 여러 살인 혐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사형은 내려졌고 이젠 육체적 사형선고마저 나올 것이냐 하는 점이 관심인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인 권력투쟁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당 대회 연기설마저 나오고 있으나 이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일단 자리 싸움에서 후진타오 세력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 시진핑의 총서기 자리는 변함이 없을 것이란 조건이 붙었을 것이다. 중국에 ‘구경거리는 뒤에 있다(好戱在後頭)’는 말이 있다. 앞으로 당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또 어떤 반전이 전개될지 모른다. 장쩌민 세력이 그냥 맞고만 있을까.



관전 포인트 7: 중국 사회가 받게 될 충격은 무엇인가



고위 관료 추문에 중국 인민들 싸늘

공산당 일당 체제에 도전 나올 수도




중국 공산당 이미지가 크게 먹칠됐다. 보시라이는 정치국원으로 13억 인구 중 서열 25위 안에 드는 거물이다. 그런 그와 그의 가족이 외국인 살해와 부패 등 심각한 범죄 혐의에 휩싸여 있다. 당의 이미지가 이만저만 손상된 게 아니다. 그러잖아도 시장경제 도입 이후 공산당의 정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고위 관료의 추문은 민심을 이반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당국이 보시라이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그럴수록 소문은 증폭되면서 집권당으로서의 공산당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끔 만들고 있다. 과거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마오쩌둥의 과오로 인해 공산당 이미지가 크게 추락했다. 이때 중국 공산당은 마오로 인해 야기된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저우언라이(周恩來)를 신격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번 풍파 뒤 새로운 캠페인이 예상되는 이유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드러난 지도부의 치부에 대해 가해지는 중국 인민의 싸늘한 시각이다. 현재와 같은 지도부 선출 방식이 옳은가, 권력의 부패 사슬을 끊기 위해선 민주제도 도입이 필요한 게 아닌가 등 중국 공산당 일당 체제에 대한 도전이 터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인민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고위 관료의 재산 해외 밀반출, 태자당이라 불리는 자녀들의 방탕한 유학 생활 등을 알게 되면서 공산당 지도부에 갖는 환멸은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 보시라이 사건은 현재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갖가지 고질적인 병폐를 농축해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 공산당 정법위 서기



법원·검찰·공안 통제하는 권력의 핵심




공산당 중앙정법위의 멍젠주 부서기, 저우융캉 서기, 왕러취안 부서기(왼쪽부터).
중국에서 법원·검찰·공안·정보 등 사법 계통은 공산당 정법위(政法委)가 관련 기관을 지도·협조하는 방식으로 통제한다. 중앙정법위 서기는 인사를 총괄하는 조직부장, 사정기관인 기율검사위 서기 등과 함께 중국 권력의 핵심이다. 정법위의 핵심 임무는 사회 안정이다. 1980년대 중반 당정을 분리하는 개혁으로 한때 철폐됐다가 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다시 부활했다. 형식적으로 정법위의 지위는 법원·검찰과 대등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선 정법위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을 겸하기 때문에 우위에 선다.



 정법위 서기는 종종 공안국장을 겸임했다. 법의 감독을 받아야 할 공안 부문이 사법 전반을 감독한 셈이다. 위젠룽(于建嶸) 중국사회과학원 교수는 “정법위가 안정 유지를 명목으로 직권을 확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정법위 서기가 공안국장을 겸임하면서 사법을 지휘하게 되면 억울한 사건, 허위조작 사건, 오심 사건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회 안정과 사법 독립 사이에서 평형을 이루는 것이 정법위 개혁의 본질이라는 말이다. 18대 당대회를 앞두고 정법위 개혁은 현재 아래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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