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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경제] 파워 중견기업인 … 이동욱 무림그룹 회장

중앙일보 2012.04.21 00:00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동욱 무림그룹 회장이 서울 신사동 사옥 임원회의실(‘갤럭시룸’)의 회사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옥의 각 회의실은 무림의 브랜드 이름을 땄다. ‘갤럭시’는 무림이 만드는 최고급 종이다. [강정현 기자]


소년은 문학이 좋았다. 소설 읽는 게 가장 즐거웠다. ‘영문학이나 불문학을 전공해 교수가 될까’ 하는 꿈을 가졌다.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다. 아코디언과 하모니카를 곧잘 다뤘다. 초등학교 내내 반장을 꿰찼다. 6학년 땐 학생회장도 맡았다. 대구의 명문 경북중 시절엔 우등을 놓치지 않았다. 고교는 서울로 유학하기로 했다. 부친의 교육열이 그만큼 높았다. 그러나 대구 수재에게 서울의 벽은 높았다. 정보가 부족했다. 서울고 시험에서 그만 낙방했다. ‘인생 최초의 좌절’을 맛봤다. 2차로 중동고에 입학했다. 조용한 학창 시절이었다. 특징 없는 학생이었다. 일단 말을 별로 안 했다. 부지불식 튀어나오는 사투리 때문이었다. 문학을 하고 싶다는 꿈은 대입을 앞두고 접었다. 연세대 상대로 진학했다. 부친은 차남인 그가 사업을 이어주길 바랐다. 인생이 그랬다. 원하지 않는 길로 접어들었는데 속도는 맹렬했다. 30대 초반에 사장이 됐고 마흔한 살엔 회장에 올랐다.

제지업이 환경 파괴한다고? 직접 심은 나무만 베는걸요



 이동욱(64) 무림그룹 회장은 2세 경영인이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재벌 2세’와는 결이 다르다. 선친인 이무일 선대 회장이 만든 무림제지에 안주하지 않고 사업 다각화를 통해 알짜배기 중견그룹으로 키워냈다. ‘종이’에 관한 한 알파부터 오메가까지를 모두 다룬다. 인쇄용지와 고급 종이류를 만드는 무림페이퍼와 무림SP를 근간으로 종이의 원료인 펄프를 생산하는 무림 P&P, 원자재인 나무를 키워내는 조림업체 무림인터내셔널까지 두루 갖췄다. 최근엔 물류, 에너지, 금융, 유통업으로도 진출했다. 대부분 제지와 밀접하게 관련된 분야다. 지난해 매출액 1조9000억원 중 펄프와 제지 부문이 1조4000억원이다. 현재 인쇄용지 분야 국내 최고 기업이다. 요즘엔 수출도 늘어 전체 매출에서 50%가량을 차지한다.



무림 P&P 울산 일관화공장에서 막 생산된 인쇄용지들이 롤 형태로 말려 있다. [사진 무림그룹]
 이 회장의 언론 나들이는 6년여 만이다. 1975년 영업부장으로 입사해 20여 년간 회사를 이끌던 그는 95년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다. 중요한 의사결정엔 자신이 참여하지만 전반적 경영 업무는 전문가에게 맡겼다. 이때부터 신문이나 방송의 인터뷰 요청엔 자신보다 전문경영인을 내보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인터뷰에 응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이제는 우리 회사를 좀 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지산업이 환경파괴·사양산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오해’를 꼭 불식해 드리고 싶었어요.”



 이 회장의 선친 이무일 선대 회장은 해방 이후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종이류를 취급하다 인쇄용지인 백상지가 100% 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사업보국’을 위해 ‘백상지 국산화’란 목표를 세웠고 56년 청구제지 주주로 발을 들였다. 58년 대표이사가 된 뒤 이탈리아에서 기계를 도입한 이 선대 회장은 59년 백상지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후 회사 이름을 무림으로 바꿨다. 아들 다섯 중 차남인 이 회장을 일찌감치 마음에 뒀다. 강도 높은 훈련이 이어졌다. 30대 초반에 사장이 된 이 회장은 선친을 대신해 외부 행사에 참석했다. 아버지 또래 사장들과 어울리면서 낮게 처신하는 법을 배웠다. 89년 이 선대 회장은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갑작스레 사망했다. “눈앞이 캄캄했어요. 그때 회사 내에 ‘성장위주파’와 ‘안전성장파’란 두 그룹이 존재했는데 일단 이들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게 필요했죠. 10년간 회사를 다니며 다져놓은 관계가 힘을 발휘했습니다. 잠깐 흔들리는 듯하던 회사는 이내 안정을 찾았죠.”



 이 회장은 89년 취임과 동시에 ‘제2의 창업’을 선포했다. 무림을 국제 규모로 성장시키고 사업을 다각화하겠다는 얘기였다. 90년 상장하고, 90년대 중반까지 공장 증설과 최신 기계 도입에 힘을 기울였다. 잘되기만 할 것 같던 회사는 97년 말 외환위기 앞에서 휘청거린다. 이 회장 스스로 “최대의 위기”라 부르는 때다. 이미 새 기계 도입을 위한 발주가 끝난 참이었다. 국내 금융기관에선 돈을 꾸기 어려웠다. 무림은 국제금융공사(IFC)에 투자를 요청했다. 이 회장은 “팔다리가 부러져도 죽는 것보단 낫다. 지배구조에 문제가 생겨도 좋으니 우선 회사부터 살리고 보자”며 전권을 IFC에 넘겼다. 자신의 지분을 다 내놓을 수 있다는 선언이었다. 결국 IFC로부터 4800만 달러, 여타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4070만 달러 등 총 8870만 달러를 유치했다. “그 시기 투자를 못 받았더라면 회사가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걸 버릴 각오로 임하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이뤄지더라고요.” 이 회장의 회고다.



 요즘 이 회장은 제지산업을 환경파괴·사양산업이라 말하는 이들을 만나면 제일 안타깝다.



 “종이의 원료가 나무라 제지산업은 나무를 베고 산림을 해치니 환경파괴산업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종이의 원료는 천연림이 아닌 별도로 조림한 나무에서 얻습니다. 당연히 제지회사는 조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죠. 나무를 심고 이산화탄소도 흡수하고, 이건 환경파괴가 아니라 친환경 사업입니다.”



 실제로 무림그룹은 지난해 6월 인도네시아에 합작법인을 설립해 2017년까지 6만5000㏊(서울시 면적 규모)의 조림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부터 이 조림지에서 펄프 생산용 목재칩을 얻을 수 있고 국내 공급도 가능하다. 무림이 자랑하는 무림 P&P의 울산 일관화공장에서는 기름 한 방울 없이 종이를 생산한다. 청정연료인 흑액 덕분이다. 펄프의 원료인 목재칩은 섬유소와 리그닌으로 구성되는데 무림 P&P는 섬유소로는 펄프를 만들고, 리그닌은 농축해 흑액을 만든다. 이 흑액을 연소시키면 스팀과 전기에너지가 나오는데 이 에너지로 별도 보일러 시설 없이 펄프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로 종이를 만드는 것이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공장이란 얘기다.



 ‘제지산업=사양산업’이란 세간의 시각에 대해 이 회장은 제지산업의 성장성을 내세워 반박한다.



 “2010년 전 세계 1인당 평균 종이 소비량이 57㎏입니다. 한데 전 세계 국가의 70%가 평균 이하며 10㎏에 못 미치는 국가도 인도를 포함해 62개국이에요. 아직도 개발도상국들을 보면 종이시장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게다가 울산 일관화공장에선 모든 작업이 100% 컴퓨터로 이뤄진다. 사용되는 기계 가격만 5000억원이다. “이런데도 제지산업이 사양산업인가요. 첨단 중의 첨단산업이지요.”



 몇 년 전 무림은 컨설팅 업체를 통해 기업 이미지 통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기에서 나온 컨셉트가 ‘종이로 세상을 진화시키는 기업, 세상을 두근두근’이다. 이에 앞서 96년엔 창립 40주년을 맞아 사훈을 바꿨다. 이 회장이 직접 지었다. ‘건강한 욕심을 갖자’다. 근면, 성실, 협동이 아니다. “건강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어느 구석 모자람 없이 다부지고 굳세어야 한다는 뜻이죠. 욕심이란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입니다. 건강한 욕심을 갖자는 건 스스로 변화와 혁신을 위해 미래지향적인, 그러면서도 타인의 자유와 인격을 최대한 존중하는 품격 있는 욕심을 갖자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이 회장은 또래 기업인들보다 반 발쯤 앞선다. 그 연배에선 ‘얼리어답터’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으로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요즘엔 갤럭시노트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취미는 영화감상. 극장에 갈 시간이 없어 유료 사이트에서 돈을 내고 보는 ‘굿 다운로더’다. 기부도 일찌감치 실천하고 있다. 자신의 소유지였던 한남대교 남단의 사옥 땅은 사옥 완공 후 회사에 기부했다.



 사업에 관한 아이디어나 영감을 어디서 가장 많이 얻느냐고 묻자 ‘신문’이란 답이 돌아왔다. “기자분 앞이라서가 아니라 중앙일보의 오래된 독자예요. 1면부터 별도 섹션의 기사까지 모든 꼭지를 정독합니다.”



 그에게 ‘종이’란 어떤 의미일까. “인류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자 인류와 문명을 이어주는 매개체지요. 아무리 디지털 기기가 발달하고 전자책이 활성화된다 해도 2000년간 종이가 해온 역할은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포춘지가 57년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것은 3분의 1 정도다. 56년을 이어온 무림은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이 회장의 건강한 욕심이 궁금했다. “100년, 200년 이어지는 세계적 제지회사가 되길 원합니다.” 문학의 길을 가진 못했지만 그가 만든 종이에 전 세계 문학작품이 새겨지고 있으니 이 회장의 꿈은 어느 정도 이뤄진 셈이 아닐까.



◆무림그룹=그룹 이름인 무림(茂林)은 ‘무성하고 울창한 숲’이라는 뜻이다. 이무일 회장이 1956년 창업한 무림제지가 모태다. 59년 국내 최초로 인쇄용지 대량생산 시대를 열었고, 74년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펄프를 생산했다. 무림그룹은 84년 삼성제지를 인수해 세림제지㈜로 이름을 바꿨다. 이동욱 회장이 이끄는 무림그룹은 무림페이퍼(옛 신무림제지)와 무림SP, 무림P&P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중앙일보-대한상의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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