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고] 원전 안전, 나무를 보되 숲도 살펴야

중앙일보 2012.04.21 00:00 종합 41면 지면보기
함철훈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연구교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최근 고리 1호기 정전사고 및 현장책임자의 사고발생 보고 지연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지식경제부는 원전을 비롯해 국가 에너지 시설의 안전점검을 위한 민관합동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함으로써 원전 안전을 위한 새로운 대책이 나오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감독 당국의 안전점검 결과 원전의 안전문제는 원전 운영자의 물적 요인보다 인적 요인이 잠재적 위험요소가 큰 것으로 재확인됐다.



 사실 이 사고는 하청업체의 안일한 기술적 대처와 위기 상황에서 정전사태를 이른 시간 내에 해결했음에도 중간관리 책임자의 개인적 판단 오류에 의한 보고 지연이라는 내부행정 절차의 과오가 여론의 질타를 받게 됐고, 후속 현상인 반(反)원전 여론의 초두효과(初頭效果 : Primacy Effect)가 과도하게 표출되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한 번 찍히면 오랫동안 헤어날 길이 없다는 것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두효과다. 지난 3월 초, 부산시의회 김수근 의원이 고리정전 사고를 외부에 알린 이후 원전에 대한 비난 여론이 점증했고 심지어 일부 사회단체는 원전의 완전폐지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1년의 시차를 두고 겹친 고리원전 문제가 정치권의 정략적 입장에서 다뤄져 천안함 폭침 사건에서 봤던 것처럼 실체적 진실이 외면되고 국가의 중대한 전략산업과 전문인력이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된다면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의 에너지 현실과 전력수급 사정을 직시할 때 시민사회는 원전이 우리 사회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하부구조임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위험시설에 의한 편익을 바랄 경우 그에 상응하는 위험도 감수할 성숙한 시민의식이 요청된다.



 중대 사고의 발생 후에는 으레 강력한 예방대책이 발표되기 마련이다. 원전을 비롯해 각종 사고예방대책의 단골메뉴는 ‘책임자 엄벌 및 관련조직에 대한 연대문책’이다. 엄벌대책은 사고 발생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다수인에 대한 일종의 겁주기이며, 연대문책은 상호감시를 통한 긴장감 조성이다. 사고 발생에 대한 엄벌은 일시적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물론 사고예방을 위해 책임자 처벌과 조직에 긴장감을 적절히 유지할 필요는 있다. 문제는 그 강도가 지나칠 경우 오히려 역기능이 초래될 개연성이 크고 사회심리적 측면에서 ‘조직적 은폐’를 싹트게 할 불안의 온상이 될 수 있음을 경험적 현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는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완화의 취지는 사고책임자에게 온정을 베풀자는 것도 아니고 해당 조직에 면죄부를 부여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심리적 탈출구를 제공함으로써 우발적 범법사태를 방지하는 한편 내부의 자정능력을 통해 안전문화를 정착시켜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원전 안전은 운영자의 노력만으로 불가능하며 환경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앞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전의 안전기반을 확실히 구축하는 것이다. 차제에 전문인력이 충분히 확보되고 적절히 배치되고 있는지, 원전시설의 유지·보수에 필요한 투자재원의 조달과 현행 전력요금 수준에 문제가 없는지, 원전 가동률은 적정수준이 유지되고 있는지, 그리고 원자력 관련 법령상 중복규제의 문제점은 없는지 등의 문제가 종합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고리 정전사태의 위기가 신속히 수습·처리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원자력이 앞으로도 계속 안전성 및 경제성 측면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사고 제로의 안전목표는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것인지를 두고 우리 사회에 많은 화두를 던져주고 있다. 흔히 ‘위기는 곧 기회’라 하지만 이 말의 진정한 뜻은 그 대처방법에 따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나무를 보되 숲을 살피는 자세로 원전 안전의 사각지대를 제거함과 동시에 안전 여유도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총체적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함철훈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연구교수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