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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릴 미’ ‘광화문 연가’… K-뮤지컬, 도쿄·오사카 흔든다

중앙일보 2012.04.21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스트릿 라이프’


K-뮤지컬 인베이전(공습).

[트렌드] 일본으로 가는 한국뮤지컬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일본에서 몰아치는 한국 뮤지컬의 인기와 확장세는 그만큼 뜨겁고 빠르다.



 드라마, 영화, K-팝으로 전이돼 온 한류가 이제 뮤지컬에까지 불어오고 있다. 올 한 해 일본에서 공연됐고, 공연될 예정인 한국 뮤지컬은 10편 안팎이다(표 참조). 소극장부터 대극장까지 작품의 크기도 제각각이며, 라이선스와 창작 등 제작 방식도 다양하다.



 시장 규모가 미국·영국에 이어 세계 3위라는 일본 뮤지컬 시장이 이토록 한국 뮤지컬에 관심을 갖는 건 이례적인 일. 분명 2012년은 한국 뮤지컬 해외 진출의 원년으로 기억될 듯싶다. 무엇 때문에 일본인들은 한국 뮤지컬에 꽂힌 걸까.



‘광화문 연가’
◆브로드웨이보다 한국이 낫다?=오는 7월 도쿄 은하극장(700석 규모)에 오르는 ‘쓰릴 미’는 이미 일본 내에서 검증이 된 작품이다. 지난해와 올 3월 일종의 프리뷰 형식으로 소극장 무대에 올랐는데 대부분의 공연이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힘입어 7월 정식 공연을 올리기로 한 것. 일본판 ‘쓰릴 미’는 일본 배우들에 의해 공연된다. 김무열·최재웅 등 한국 배우가 출연하는 스페셜 공연도 5회가량 예정돼 있다.



 ‘쓰릴 미’는 본래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이다. 한국엔 2007년 처음 소개됐다. 어린이 유괴 사건과 관련된 미스터리물이다. 두 남자의 치밀한 심리전과 동성애 등이 오묘하고 몽환적으로 그려져 매니어들의 절대 지지를 받았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왜 일본은 미국 원작 측과 계약하지 않고, 이를 수입했던 한국 측과 계약을 맺은 걸까.



 “한국적 재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는 게 일본 제작사의 답이다. “미국 원작은 지나치게 구체적이지만, 한국은 다소 모호한 시간대와 ‘나’와 ‘그’라는 추상적 인물 설정으로 오히려 공감의 폭을 넓혔다. 피아노 반주 하나로만 무대를 단순화시킨 것도 새로웠다”고 전했다.



◆핵심부를 공략하라=현재 일본 뮤지컬 시장의 1년 매출액은 대략 1조원으로 추산된다. 한국에 비해선 5배가 넘는 큰 규모다.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하지 않고 내국인 위주로 돌아가는 시장인 것을 고려하면 일본인의 뮤지컬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 뮤지컬이 일본에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지난해 ‘궁’과 ‘미녀는 괴로워’가 히트를 하면서다. 두 작품 모두 드라마와 영화로 이미 일본에서 인지도를 높인 터라 뮤지컬로 변환돼 입성하기에 어려움이 적었다.



 올해는 조금 더 적극적이다. 특히 ‘광화문 연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와 오사카의 대표 극장에서 연이어 공연을 한다. 게다가 대형 창작 뮤지컬이다.



 임영근 프로듀서는 “처음엔 공연 기간도 짧았고, 극장도 좋은 데가 아니었다. ‘배우를 누구로 써야 한다’는 식의 요구도 많았다. 하지만 한국 내 공연을 본 뒤 일본 제작사의 마음이 확 달라졌다. 뮤지컬 자체만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걸 인정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배우도 다르고, 전략도 다르다=‘파리의 연인’ ‘커피 프린스’ 등은 기획 단계부터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둔 뮤지컬이다. 한국 공연을 마친 뒤 곧바로 일본 공연이 올라간다. 반면 ‘드림 하이’는 아예 한국 공연 없이 곧바로 일본 공연부터 시작한다.



 뮤지컬 해븐 박용호 대표는 “드라마·영화 등에서 높아진 제작비 충당을 해외 드라마 판권 판매로 어느 정도 보충하듯 한국 뮤지컬의 일본 진출 역시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수순이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관객 눈높이에 맞는 캐스팅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예가 ‘스트릿 라이프’다. DJ DOC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이 뮤지컬은 한국 공연 때는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 않았지만, 일본 공연에선 ‘초신성’ 멤버가 출연한다. ‘초신성’은 현재 일본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최고 인기 아이돌 그룹. 뮤지컬 ‘광화문 연가’ 측도 현재 SM엔터테인먼트와 배우 출연 등을 놓고 논의 중이다. “대우 등이 더 좋은 덕에 일본 공연 캐스팅하기가 더 수월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단지 한류 스타에 의존하기보다 일본 관객의 성향을 면밀히 조사해 차근차근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본 전문가가 본 K-뮤지컬



놀랄만큼 다양하고 역동적

날것 객석에 후~욱 던지는

한국 배우 역량도 대단




네르케 플래닝 글로벌 사업 총괄 프로듀서인 이가라시 히사시(45). 그는 한국 뮤지컬 일본 진출의 핵심 인사다. ‘커피 프린스’ ‘드림 하이’ 등이 그의 손을 거쳐 일본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가 바라본 한국 뮤지컬의 장점과 가능성은 무엇일까.



 -왜 한국 뮤지컬인가.



 “올해 두 번 한국에 들어와 6편을 봤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새삼 한국 뮤지컬의 다양성과 역동성은 놀랍다. 소극장부터 중극장, 대극장 등 작품의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스타일과 향취는 나름대로 음미할 가치를 갖고 있다.”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이 진짜 인기 있나.



 “지난해 ‘궁’과 ‘미녀는 괴로워’가 공연됐다. 성공했다. 올해는 더욱 활발하다. 물론 현재까지 일본에서 공연되는 한국 뮤지컬의 방향은 한류 스타와 한류 드라마에 의존한 면이 있다. 당분간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만간 다카라즈카나 극단 시키와는 전혀 다른, 한국 뮤지컬 고유의 독창성이 일본 관객에게 어필할 것이라 확신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나.



 “‘닥터 지바고’는 해외에서 처음 제작됐지만 한국에서 공연되면서 새로운 느낌이 가미됐다. 프랑스·체코·오스트리아 등 전 세계 모든 뮤지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도 거기에 한국의 색깔을 빚어낼 줄 아는 게 한국 뮤지컬이다. 난 그 근원을 한국의 브로드웨이인 대학로에 있다고 본다. 언제나 공연이 올라가고,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대학로는 제작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 배우의 놀라운 역량 역시 빠질 수 없다.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가공하지 않고 덩어리째 객석에 후~욱 던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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