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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보시라이 실각의 교훈

중앙일보 2012.04.21 00:00 종합 42면 지면보기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역시 옛말이 맞다. 중국 고전 예기(禮記)와 대학(大學)에 나오는 ‘심정 신수 가제 국치(心正 身修 家齊 國治)’ 여덟 자 말이다. 중국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가 이 중 첫 두 글자(心正)만 마음에 새겼어도 지금 같은 패가망신은 피했을 거다. 보 전 서기의 삶을 들여다보면 시간문제지 실각은 예정돼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마음이 바르지 못했다(心不正). 5년 전 중국 최고 권부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탈락한 그는 변방인 충칭으로 내려온 뒤 배수진을 쳤다. 퇴로는 막고 돌진만 허용했다. 목표는 정치국 상무위원. 그래서 나온 게 ‘창훙다헤이(昌紅打黑)’다. 당의 혁명 사상으로 인민을 규합하고 조폭과 비리를 쳐 민심을 얻겠다는 전략이었다.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깡패와 접촉만 해도 철퇴를 내리쳤다. 없는 조폭을 만들기도 했다. 회수한 검은 돈은 인민들의 사상무장 교육과 각종 개발비용으로 썼다. 인기는 대단했다. 그가 상무위원이 안 되면 충칭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를 본 청궁이(程恭義)라는 홍콩 학자가 지난해 “충칭에 효웅(梟雄)이 하나 있는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일갈했다. 그가 덧붙인 말. “이 영웅의 마음속에 인민은 없고 오직 표만 있다.”



 그는 몸을 닦지 못했다(身不修). 중앙정부와도 자주 부딪쳤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이루라고 하자 ‘분배 먼저’ 하겠다고 받아쳤다. 그래서 잘사는 동네와 못사는 동네를 합쳤다. 부자 돈으로 서민 도와주는 게 공동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우겼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 두 마디를 먼저 했다. ‘하나로 통일(一不二)’하고 ‘변명하지 말라(不由分說)’였다. 공개 회의에서는 총리도 비난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서남지역 충칭국(重慶國)의 지존이라는 ‘서남왕(西南王)’이었다.



 그는 가정을 다스리지 못했다(家不齊). 부인은 예쁘고 총명했다. 가정도 학벌도 좋은 변호사였다. 부인이 남편의 지위를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했을 때 그는 못 본 체했다. 부인이 해외로 빼돌린 재산이 수억 달러에 이른다는 소문에도 귀를 막았다. 결국 부인은 돈 문제 등으로 영국인 사업가를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는 처지가 됐다. 아들도 총명했다. 영국 옥스퍼드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 재학 중이다. 세 번이나 권위 있는 기관으로부터 아시아를 대표하는 전 세계 젊은 미래 지도자로 뽑혔을 정도다. 그러나 그에게는 방탕이 있었다. 고급 스포츠카 20여 대를 몰고 다니며 밤의 여인들과 노닐 때 그가 자식을 엄히 훈계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에게 국치(國治)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영어(囹圄)를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물론 그는 “권력투쟁에서 졌을 뿐”이라고 억울해 할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정치는 발라야 한다(政者 正也)”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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